대체 불가의 아이콘 케이트 모스
한국과 미국, 프랑스 <바자>가 함께하는 2025년 #bzaaricons 프로젝트. 케이트 모스가 프랑스 판의 대표 얼굴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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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E MOSS
케이트 모스가 시대를 초월한 아이콘으로 불리는 몇 가지 이유.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귀고리, 목걸이, 팔찌는 모두 Bvlgari. 재킷은 Polo Ralph Lauren. 팬츠는 Levi’s, 벨트는 Isabel Marant.
AI 전문가 집단에 아이콘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그들은 케이트 모스를 묘사하는 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답변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아주 희귀하고 완전히 독창적이며,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고 또 부인할 수 없는 재능이다. 모스의 경우, 초기에는 모델로서의 실력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지금은 전설이 되었지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모스는 1988년 14살 때 가족 휴가를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오는 JFK공항에서 스톰 모델 매니지먼트 창립자인 사라 두카스에 의해 캐스팅된다. 두카스는 80년대 후반 당시 패션계를 지배하던 슈퍼스타들과는 전혀 다른, 모스의 우아하고 중성적인 외모에 끌렸다. 키는 170cm가 채 안 되고, 가늘고 약간 구부러진 다리, 그리고 묘하게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던 모스는 당시의 흐름에는 맞지 않았다. 케이트 모스에 관한 유명한 인용문을 보면,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그녀를 “치아가 고르지 않고 다리가 휜 런던 아이”라고 묘사했다고 전해진다.
모스의 야성적인 기묘함은 강렬했고, 이는 패션계의 이상을 전통적 미의 기준에서 규정하기 힘든, 비전형적인 것으로 바꾸는 힘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슈퍼 파워’는 아니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특유의 카리스마였다. 런던 교외 크로이던을 떠나 중심가로 진출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발산되는,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 마리오 소렌티부터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맥퀸 등 그녀를 처음 만나 작업했던 모든 사람이, 그 마법 같은 순간을 평생의 기억 속에서 재생하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녀를 본 순간 알았어요.” 1989년 첫 쇼에 그녀를 캐스팅한 존 갈리아노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캐릭터였고, 존재감 그 자체였어요. 그것은 가르칠 수도 없고, 속일 수도 없었죠.”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좋은 타이밍이다. 자신의 독특한 재능이 무엇이든 간에 문화 심리 속 빈틈을 메우고, 그것이 다음 집착 대상을 찾기 시작할 때쯤 정확히 등장해야 한다. 모스가 나타났을 때, 1980년대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과잉의 10년’이라 불리던 시대의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파워 수트와 반짝이는 머리, 돈은 사라졌다. 그리고 빈티지풍 슬립 드레스의 단순함에서 보여지는 우아한 느낌, 깨끗한 피부와 헝클어진 머리로 대변되는 편안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런지 음악과 대안 문화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귀고리, 팔찌는 Bvlgari, 재킷은 Polo Ralph Lauren. 팬츠는 Levi’s.
모스의 돌파구는 1990년 코린 데이가 촬영한 <더 페이스> 화보였다.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고 베이식한 옷차림에, 날것 그대로의 그녀를 담은 친밀한 사진들이었다. 이후 모스는 ‘Cry Baby’와 바이퍼 룸(Viper Room) 시절의 조니 뎁과 사귀며 라이더 재킷과 헝클어진 머리를 한 완벽한 X세대 커플로 주목받았다. 그들은 그날의 조명에 따라 서로 다른 치명적 매력을 뽐내곤 했다.
그러던 중 모스는 1992년 가을, 마크 제이콥스의 페리 엘리스 ‘그런지’ 쇼에 등장하며 룩 못지않게 태도로 정의되는 새로운 ‘쿨’의 상징이 되었다. 제이콥스는 이렇게 말했다. “방에 들어오는 순간, 그녀는 그냥… 쿨했어요. 쿨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쿨한 거요. 그것은 단지 외모가 아니라 태도, 미스터리였어요.”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과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소장된 초기 코린 데이 사진이든, 수십 년간 그녀를 따라다닌 파파라치의 사진이든, 카메라 앞에 선 모스에게는 언제나 매혹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녀는 빛나는 감각의 장난기와 여유를 발산하며, 자신의 삶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롭고 대담하게 살아도 된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리고 물론 옷도 큰 몫을 했다. 발레 플랫과 스키니 진, 글래스턴베리의 장화와 쇼츠, 2011년 킬스의 제이미 힌스와 결혼할 때 입은 (갈리아노가 제작한) 매우 심플한 크림색 웨딩드레스와 베일까지…. 모스는 옷이라는 언어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법을 세대에 걸쳐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침묵이 슈퍼 파워라는 타고난 인식이다. 모든 위대한 아이콘은 침묵하는 법을 안다. 자신의 작업이 스스로 말하게 두는 것이다. 진정으로 야생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특정한 절제가 필요하다. 모스는 처음부터 그런 절제를 지녔다. 가장 유명했던 피트 도허티 시절을 포함해 불법 약물 복용 사진이 <데일리 미러>에 실리는 등 수많은 굴곡 속에서도 그녀는 “불평하지 말고, 설명하지 말라”는 모토를 지켰다.
이 유명하고 현대적이며 야생적인 모스의 인간관계에는 구시대적 요소가 있다. 마치 무성영화 배우나 은둔 작가처럼, 자신의 (때로는) 매우 퇴폐적이고 흥미로운 삶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녀는 그 삶을 사는 데 집중한다.

귀고리는 Bvlgari, 재킷은 Polo Ralph Lauren. 티셔츠는 Petit Bateau.
바로 이 점이 모스를 패션 슈퍼스타에서 진정한 록스타로 끌어올렸다. 음악하는 사람들이 유명인의 등급에서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나는 유명한 배우들이 거의 들어보지 못한 밴드의 베이시스트들에게 아첨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흥미로운 사회현상이다. 하지만 모스는 예외였다. 그녀는 록스타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록스타였기 때문이다. 프라이멀 스크림과 함께 작업하며 2003년 ‘Some Velvet Morning’ 뮤직비디오에 출연했고, 놀랍게도 곡 중에서 보비 길레스피와 능숙하게 듀엣을 부르기도 했다. 그녀는 브릿팝 시대부터 영국의 모든 주요 음악 신에서 뮤즈이자 창작 파트너로 활동했다.
아마도 모스의 매력을 가장 잘 담아낸 것은 2003년 소피아 코폴라가 감독한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I Just Don’t Know What to Do with Myself’ 뮤직비디오일 것이다. 밴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거친 기타와 메그 화이트의 매혹적인 드럼, 잭 화이트의 절절한 보컬로 이루어진 발라드 곡이다. 영상 속, 그러니까 코폴라의 눈에 비춰지는 것은 모스뿐인데, 그녀는 흑백 화면 안에서 홀로 폴 댄스를 춘다. 2분 44초의 영상은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다. 풍성한 금발 뒤로 보이는 얼굴은 아름답고, 폴 댄싱용 하이힐과 작고 검은 속옷 차림의 그녀는 섹시하다. 하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친밀하고 유쾌하며, 장난기와 순수함이 묻어난다. 영상을 보다 보면 집중하게 되고 매료되지만, 어쩐지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느낌도 든다. 그녀는 계속해서 움직이는데, 얼굴이 잠시 빛에 스쳤다가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몸을 흔들면서 그림자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등 음악의 리듬에 따라 다음 장면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결국 모스는 한 명을 위해 춤을 추는 듯 보인다.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Credit
- 사진/David Sims
- 스타일리스트/Emmanuelle Alt
- 글/ Lizzy Goodman
- 번역/ 이민경
- 헤어/ Paul Hanlon
- 메이크업/ Yadim,Michelle Class
-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 Georgia Bedel,Penelope Vanni
- 프로덕션/ Erin Fee Productions
- 캐스팅/ Piergiorgio del Moro,Helena Baladino(DM Casting with Alejandra Perez)
- 디자인/한상영
- 디지털 디자인/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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