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국제영화제를 휩쓴 배우 김현목 #액터스체어 14
화제작 '3670'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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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ER'S CHAIR : 김현목
스크린 속 김현목은 늘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있다. 타고난 재능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건 그가 성실히 접어둔 무수한 시간의 주름이 켜켜이 쌓인 결과였다.

재킷, 셔츠, 팬츠, 슈즈는 모두 Loewe. 페도라는 Brown Hat.
하퍼스 바자 스스로를 배우로 정체화하고 사는지 궁금해요.
김현목 아니, 아니에요.
하퍼스 바자그러면 어떻게 생각해요?
김현목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연기하는 노동자요.
하퍼스 바자 뭐가 다른가요? 본인이 할 수 있는 어떤 노동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김현목 그런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그러면 연기 외에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 또 있나요?
김현목 그건 아니에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에게 오로지 연기라는 일 하나만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연기는 내가 원한다고 언제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퍼스 바자 연기를 향한 마음이 때로는 자기 자신을 실망스럽게 하거나 아프게 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됐나요?
김현목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마음이 크니까. 배우로서 조금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느낄 때도 사실 마냥 행복했는데 일부러 들뜨는 마음을 억누르며 자제했어요. 주변에서 축하한다고 해도 “아니야 뭐 그냥 일하는 거지” 그렇게 차분하게 대응했던 것 같고.
하퍼스 바자 그때가 언제예요?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 무렵인가요?
김현목 맞아요. 2018년 정도. 이제 막 TV에 조금씩 얼굴을 비추고 할 때요.
하퍼스 바자 그전에는 주로 어떤 작업들을 해왔어요?
김현목 저는 연기 전공이 아니라 처음에 시작할 때 접근 방식을 잘 몰랐어요. 그래서 페이를 받지 않는 작업도 많이 했고, 고교 동아리 같은 데서 연기하고 문화상품권으로 페이를 받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IPTV 영화나 종편 재연 드라마 같은 것도 찍었어요. 그땐 이 일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부모님을 향한 어필용이기도 하고. 나 이렇게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같은. 그래도 TV에 나오면 보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제가 하고 싶은 작품들은 아니었고. 그래서 딜레마였죠.

니트, 셔츠는 Ferragamo.
하퍼스 바자 어릴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나요?
김현목 어릴 때는 연기를 그렇게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노래 부르는 건 좋아해서 중학교 때 친구들과 학원 끝나면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 정도였고, 친구와 <슈퍼스타 K>에 지원해보기도 했어요. 예선 탈락 했지만요.(웃음) 대학 와서 친구와 뮤지컬 보러 다니다가 뮤지컬 동아리를 시작했고, 극회에도 들어가봤어요. 대학 졸업 후에는 안양에 있는 한 극단에 들어가서 막내 생활을 하다가 여긴 아니다 싶어서 도망칠 요량으로 뮤지컬 오디션을 계속 봤거든요. 그중 하나에 합격해서 전국 투어를 한창 하고 있는데 연출님이 매체를 추천하셨어요.
하퍼스 바자 너는 매체 연기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이렇게요? 이유가 뭘까요?
김현목 그때 연출님 말씀은 그냥 제 피지컬이었어요. 너는 왜소해서 무대에 서기엔 역할이 한정적일 거다. 그러니 카메라 앞으로 가라. 그때는 정말 서운했죠. 첫 작품인 데다 반 년 정도를 걸쳐서 했던 전국 투어의 막바지 무렵이었거든요.
하퍼스 바자 그랬을 것 같아요. 그 반년의 시간을 부정당한 것 같기도 할 테고. 그런데 매체에 잘 어울린다고 한 이유가 단순히 체구의 문제는 아닐 것 같아요. 김현목 배우가 연기하는 스타일이나 연기 톤이 일상 연기에 특화돼 있잖아요. 말하듯이 연기하고, 눈빛도 섬세하고. 무대 연기는 기본적으로 관객 시점에서 풀 샷일 수밖에 없는데, 바스트나 클로즈업 샷에 어울리는 화법과 목소리를 가졌다고 생각해요.
김현목 그런가요?(웃음) 암튼 그때는 좀 서운했는데, 필름메이커스(영화계 커뮤니티) 같은 곳도 그분이 알려주셨어요.
하퍼스 바자 그렇게 영화 쪽 커리어가 시작된 건가요?
김현목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죠. 조금 과장해서 하루에 30개씩은 프로필을 냈던 것 같아요. 한 달에 약 천 개를 낸 거죠. 그래도 오디션조차 볼 기회가 없었어요. 학생 단편영화도 못했고요. 그러다 딩고의 전신인 몬캐스트에서 드라마 타이즈 형식의 콘텐츠를 찍게 됐어요. 당시 플랫폼은 페이스북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유튜브 숏 드라마 같은 거죠. 그게 첫 작업이었어요. 그런데 그 채널이 잘되고 커지면서 일종의 필모 영상들이 생겨났고, 학생 단편영화에 미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하퍼스 바자 그렇게 단편영화를 시작하게 됐군요.
김현목 네, 그렇게 한두 편 찍다가 처음으로 영화제에 가게 됐던 작품이 <베스트컷>이에요. 이 영화로 국내 단편영화제는 거의 다 돌아본 것 같아요. 이 작품 이전에는 학생 작품에서도 1~2학년들이 불러줬는데, 이후로는 3~4학년들이 불러주더라고요. 그때 세상이 차갑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웃음) 배우가 한 역할에 선택되는 데 어떠한 배경이 필요하긴 하구나, 하고요.
하퍼스 바자 아마 그들도 확신이 부족해서일 테죠. 그러면 연기를 배운 적은 딱히 없나요?
김현목 없어요. 이상희 누나가 지난 액터스 체어 인터뷰에서 “연기는 취향”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거기 크게 동감해요. 그런데 연기 학원에서 가르치는 일은 해봤어요. 지금도 기회가 생기면 레슨도 하곤 하는데 인기가 좀 있어요.
하퍼스 바자 배우지 않고 가르쳐서 교수법이 신선한가요?
김현목 그런 것도 같아요. 연기 학원에서 가르칠 때도 어필이 돼야 하니 제 나름의 탄탄한 수업 자료를 만들었거든요. 현목론이라고.(웃음)
하퍼스 바자 그게 어떤 내용이죠?
김현목 음, 저는 가짜 시간을 강조하는 편이에요. 연기를 잘해보고자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첫 번째 목표는 주로 진실한 몰입인 것 같아요. 물론 매 순간 그걸 해내면 가장 좋죠. 하지만 현장의 여러 제약 때문에 생각보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우리가 타고난 배우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저는 매 순간 실수 없이 연기해내는 걸 목표로 삼아요. 아이폰 동영상에서 바의 어느 한 지점을 누르면 그곳이 확장되잖아요. 실제 시간은 같은 리듬으로 흐르지만, 장면의 중요도나 인물의 상황, 카메라의 위치에 따라서 배우는 인위적으로 그 시간을 늘려서 연기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하퍼스 바자 일종의 카이로스의 시간이네요. 그 상황의 듀레이션을 배우의 감각으로 만들어낸다는 거죠?
김현목 맞아요. 학생들도 처음엔 어색해하는데 막상 해보면 잘 캐치하고 연기해내더라고요. 신기해하기도 하고.
하퍼스 바자 그러면 본인은 작품에 임할 때 어떤 방식으로 준비해 가나요?
김현목 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조금만 해도 착착 잘 돼서 역시 난 타고났구나, 그렇게 생각하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단계들을 거치며 두려움이 확 몰려드는 시기도 찾아왔고,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예전보다 더 철저히 준비해요.
하퍼스 바자 원래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있잖아요.(웃음) 지금은 어떻게 준비하나요?
김현목 솔직히 말하면 조금 창피한데 완전 기계처럼 되기 위해 무한 반복해요.
하퍼스 바자 그게 뭐가 창피해요? 대사와 상황을 체화시키는 거잖아요.
김현목 자다가 누가 갑자기 깨워서 하라고 해도 바로 나올 정도로.
하퍼스 바자 거의 데뷔하는 아이돌처럼 연습하는 거네요.
김현목 그 정도로 연습해야 그나마 흔히 말하는 몰입이 찾아오고, 배우의 눈 안에 일말의 영혼이 담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도 안 되는 경우도 많고요.
하퍼스 바자 그 순간은 매번 오기 힘들잖아요.
김현목 맞아요, 이젠 바라지도 않는 정도로요. 그래서 창피한 거예요. 사실은 가짜니까.
하퍼스 바자 배우분들이 그런 말을 정말 많이 해요. 가짜야, 방금 그거 가짜로 했어, 사람들도 아마 눈치챘을 거야. 그 가짜로 했다는 마음을 집까지 끌고 가더라고요. 그런데 어떻게 매번 진짜일 수가 있겠어요?
김현목 그런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네요. 다들 그렇구나.

셔츠, 스웨트셔츠는 Recto. 레이어드한 스커트, 팬츠는 Beyond Closet. 슈즈는 Loake.
하퍼스 바자 매번 최상의 상태가 아니잖아요. 환경이 어수선할 때도 있고, 상대 배우가 잘 받아주지 않을 때도 있고. 그런데 진짜를 맛본 어떤 순간이 기준처럼 자리하다 보니 거기 가닿지 않으면 배우들이 일종의 길티를 갖는 것 같아요. 저는 꼭 영혼을 담지 않아도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기도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현목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좀 다른 예시이지만, 예전에 정유미 선배님이 <씨네 21> 인터뷰에서 바람이 눈이 훅 들어와서 눈물이 주르륵 흐른 적이 있는데, 그 장면에 감동받은 관객 앞에서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하신 말이 생각나요.
하퍼스 바자 그게 매체의 특징이라고 생각해요. 선택적 앵글과 편집에 의해 관객에게 도달되는 감정은 아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아까 말한 ‘가짜 시간’에 대해 더 듣고 싶은데, 그건 장면과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 꼼꼼히 선행돼야 가능한 적용이잖아요. 출연작 <3670>의 예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김현목 음…. 바로 떠오르는 장면은 편의점에서 영준이 철준과 우연히 마주치는 신이에요. 영준이 철준을 보고 놀라고 반가워하는 순간. 혹은 교회 앞에서 철준에게 첫 만남에서 누구를 선택했냐고 물어볼 때가 생각나요. 그 순간들을 조금 늘려서 했어요.
하퍼스 바자 컷과 컷, 동작과 동작 사이를 연기해내는 게 감정 표출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 같아요. 어떻게 보면 지문이죠. 그러니까 지문을 표현하는 연기가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의 중요성을 줄곧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김현목 저도 잘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는 소위 경지에 오르는 길은 이런 것 같아요. 나는 달달 외워서 버튼을 누르면 대사가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나를 온전히 놓지 않고 현장 상황을 살피면서 그날의 공기까지 아우르면서 표현해내는 것. 그걸 놓치고 가면 말 그대로 그냥 기계인 거잖아요.
하퍼스 바자 <3670>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볼까요? 탈북자와 퀴어라는 이중의 소수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인데요, 김현목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요?
김현목 개인적으로 대문자 T로서 말하자면, 포함과 배제의 개념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영화였어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그 점이 여실히 느껴졌고, 제가 맡은 영준 캐릭터도 그런 시점에서 바라보면 이해가 정말 잘 됐어요. 하지만 이 영화로 다양한 영화제를 다니고, 관객과의 대화도 꽤 많이 하면서 생각한 건 이 영화를 수식할 때는 ‘퀴어 영화’라는 점이 선두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최근 박선우 작가의 <어둠 뚫기>라는 소설을 읽었거든요. 우연히 접했다가 거의 울기 직전까지 빠져들었어요. 책 뒤쪽에 실린 비평을 읽다가 아주 잘 쓰인 한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즉 보편성으로 귀결이 될지라도 그 출발이 소수자의 이야기이자 그 특수성에서 출발한 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윤리적인 책무이기도 해요.
하퍼스 바자 본연의 영화 취향은 어떤 편인가요?
김현목 저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항상 첫 번째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의 <더 헌트>를 꼽아요. 마침 최근에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책도 사 봤는데, 인과성과 합리성을 주장하는 인간들의 모순이 저는 항상 너무 재밌더라고요.
하퍼스 바자 기본적으로 약간 시니컬한 편인가요?
김현목 일을 하다 보니 좀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앞서 자신을 연기하는 노동자라고 표현했는데, 그 앞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어떤 걸 붙이고 싶어요?
김현목 성실한. 그 안에 꾸준함과 진득함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퍼스 바자 현재진행형임도 느껴져요. 배우가 된 뒤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나요?
김현목 사람 김현목이 나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아질 기회를 안겨준 좋은 선택이었죠. 스스로 배우를 나의 직업으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학교 다니면서 곰팡이 공부만 했거든요. 당시에는 주된 나의 ‘렌즈’가 곰팡이 툴밖에 없어서, 내 주변의 세상을 다 그것으로 해석했던 것 같아요. 저건 무슨 균이 있어서 문제가 생겼나, 저건 무슨 균 덕에 해결이 됐나. 나는 앞으로 무슨 균을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커리어의 성과를 낼 수 있으려나. 지금은 그 렌즈가 두어 개 더 생겼어요. 다복해진 느낌이에요. 배우 일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을 디테일하게 곱씹어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잖아요. 사람 김현목으로서는 그렇게 치열하게 들여다보지 않았을 타인의 이야기들,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 사이에 다리를 놓는 과정, 그걸 형상화하고 체화해보는 일련의 반복된 시간들, 그걸 또 놀이라는 형태로 다가가볼 수 있는 건 배우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 2023년 11월호부터 <바자>가 독립영화 및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을 보여준 배우를 조명해온 ‘액터스 체어(Actor’s Chair)’ 칼럼이 이달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임선우, 한해인, 장선, 김시은, 강진아, 주보영, 옥자연, 김새벽, 안민영, 홍정민, 금해나, 이한주, 이상희, 김현목. 배우의 삶과 연기에 관한 진솔한 생각을 나눠준 14인의 배우를 응원합니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현민
- 사진/ 김영준
- 헤어/ 조소희
- 메이크업/ 홍현정
- 스타일리스트/ 김경선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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