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프리즈 어워즈 수상자, 임영주 인터뷰
대척점에 서 있는 미신과 과학의 공통점은 의외로 믿음이다. 임영주(Im Youngzoo)는 둘 사이의 거리를 쥐고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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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믿으십니까?
대척점에 서 있는 미신과 과학의 공통점은 의외로 믿음이다. 임영주(Im Youngzoo)는 둘 사이의 거리를 쥐고 흔든다.

프리즈 서울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작인 <카밍 시그널(Calming Signal)>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자.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보내는 진정 신호’라는 용어를 제목으로 두었다. 어떤 작품인가?
어머니가 키우는 반려견의 행동을 보며 시작되었다. 이미 익숙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새로운 곳에서 경계를 하듯 뱅글뱅글 돌다가 자리를 잡는다거나 흙이 없는데도 땅을 파는 시늉을 하는 행동들이 궁금해져 찾아보았다. 이처럼 동물에게 기억에 남아 체화된 본능적인 몸짓,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행동이 사람들에게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원형적 몸짓, 그중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진 민속춤인 회전춤에 대해 살펴보았다. 문화권마다 춤의 엄격함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자연과 하나 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품고 있었다. 이후 현대에 이르러 다양하게 변형된 춤과 지구 자전축의 흔들림을 보며, 그것들이 어떤 징후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발전시켰다.

미신과 신념, 종교 같은 합리성이 부족한 ‘불확실한 믿음’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1월 1일에 태어났다. 타고난 사주를 바꾸기 위해 일 년 중 다른 한 날을 정해 20년 동안 헛 생일밥을 먹다 성인이 된 후 출생의 비밀일 수 있는 진짜 생년월일을 알게 되었다”라는 프로필에 눈길이 갔다.
가족들은 1월 1일에 태어난 내가 안정적인 삶보다는 밖으로 나도는 삶을 살 거라는 사주를 믿었다. 그래서 가짜 생일을 만들었다. 어릴 때 꼬박꼬박 그날에 맞춰 생일 파티도 했는데.(웃음) 주민등록증을 받을 즈음에야 내 원래 생일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생일이 다 뭔가 싶어 챙기지 않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훨씬 다양한 종교가 있었던 것 같다. 커가면서 그중 일부가 이단이나 사이비로 불리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친숙함이 한순간에 낯섦으로 바뀌는 경험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의 수가 줄고 있고,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주말마다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같은 것을 염원하던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가는 걸까. 2016년 개인전에서는 그 에너지를 운석이나 사금을 찾는 취미 동호회의 문화 속에서 표현해보았다.

말한 대로 믿음이 형성되고 수용되는 과정을 관찰한 후 달리 설득하거나 주장하지 않고 과학과 합리성을 덧대어 희극적으로 풍자한다. 주로 영상 매체를 사용하여 여행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개인 서사와 집단의 역사적 이야기를 결합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해 전시에서 그림을 건 적도 있고, 책도 쓰고 퍼포먼스도 한다. 단지 질감의 차이다. 매체를 각자 다른 특성을 지닌 공간으로 보는데 나에게는 땅과 같다. 예를 들어 책이 접힌 땅이라면 영상은 흐르는 땅이다. 작가의 입장에서는 영상이라는 땅에 길을 내는 게 가장 편한데 관객 입장에서는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책은 독자가 원하는 대로 훌훌 넘기거나 몇 시간을 붙잡고 있을 수 있다. 눈으로 직접 읽고 머리에 새기지 않으면 안 되는 참여적인 매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따라 어울리는 곳에 털어놓는데 영상에 걸맞는 이야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미련 未練 Mi-ryeon>, 2024, 영상, 소리, 물체, 60분. 작가 소장. 사진: 이의록
<돌과 요정> 시리즈, <인간과나人間科我> 같은 손에 쥘 수 있는 물성을 지닌 책을 5권 발표했다. 전시와 맞물려 있지만 도록보다는 도서에 가깝다.
지금까지 도록답게 만든 건 첫 전시 때뿐이다. 그것도 완전한 도록 형식은 아니었다. 산수 책이 산수와 산수익힘 책으로 나뉜 것처럼 한 권은 이론, 한 권은 실습지 형식을 따랐다. 한 작업을 준비하면서 쌓은 것들을 뭉쳐 내놓으면 또 다른 의미를 가진 게 된다.
작품에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해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물론 각국에 흩어져 있는 과학자, 소설가, 역사학자 등 창작자와 함께 종말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 편지와 문자 메시지를 활용한 적도 있다. 음악가와 소리 대 영상을 주고받는 것처럼 ‘대화’ 방식을 자주 차용한다.
갤러리나 주변에서 추천해준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연락을 보내고 그 답을 전달받고, 음악가와 텍스트가 아닌 소리와 영상으로 덧쌓아가는 작업을 하면서 굉장한 재미를 느꼈다. 나는 내가 아주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사람을 피하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생각보다 말하고 싶은 것도 많고 접촉이 싫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과 작업을 하면 내 색이 옅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우도 있었다. 실제로 협업을 하면서 내 감정과 나의 모양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고 자신감도 생기더라. 작품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고 비평이 생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이름을 알고 내가 만질 수 있는 몇 사람의 반응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이다 라이다 내 무덤 좀 찾아주소>, 2023, 쇼케이스와 퍼포먼스 기록사진. 사진: 이의록
작년에 열린 전시 «미련»에서는 관객이 직접 임사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응급구조용 은박지를 덮은 채 따뜻한 돌을 쥐고 머리맡에서 피어오르는 쑥 향을 맡으며 VR 장치를 쓰고 자신의 묘자리를 찾아가는 것. 감각에 가까운 지점이다.
이 작업을 하기 2년 전에 VR 작업을 한 적이 있다. 프로그램은 제대로 만들어졌는데 내 작업과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시는 VR을 활용할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다 간단한 수술을 받을 일이 생겼을 때 새로운 감각을 알게 되었다. 한 대형 병원이었는데 수술을 위해 침상에 누워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처음엔 너무 창피하고 떨렸는데 점점 감각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시선은 천장에 고정된 채 수동적으로 움직여지는 사이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냄새,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목사님의 체취 등이 날카로울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왔다. 불빛, 내 추운 몸을 덮어주는 따뜻한 담요까지. 비슷한 시기 레지던시 생활을 하면서 눈여겨본 무덤이 있었는데 나중에 내가 눕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알고 보니 빈 묫자리라고 하더라. 묫자리도 결국은 찾아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옛날 사람들에게 묫자리 찾기는 일종의 메타버스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난봄 뉴욕의 아망트 리서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인상 깊게 본 것은?
오늘 촬영의 배경이 된 사진들이 모두 뉴욕에서 찍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묘지에 자주 갔는데 뉴욕의 묘지는 또 다른 모습이라 흥미로웠다. 자연사박물관 등에서 동물 박제를 하는 박제사를 만나기도 했다. 그분의 컬렉션을 담은 서랍이 있었는데 박제할 때 쓰는 눈알이 가득 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유리를 사용해 수공예로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 공장에서 대량으로 프린팅한 것들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하나 하나 모양이 다 달라 보는 재미도 있었고. ‘데스 카페’에서 죽음지도사를 만나 죽음을 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듣기도 했다.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는 문화를 여럿 체험하고 돌아왔다.

<카밍 시그널>, 2023/2025, 3채널 영상 설치. 컨셉 이미지. ‘프리즈 아티스트 어워드’ 후원으로 제작
‘올해의 작가상 2025’ 후원작가 4인 중 1인이다. 어떤 작품을 보여주는지 궁금하다.
2023년 개인전 «라이다 라이다 내 무덤 좀 찾아주소»와 작년 개인전 «미련»을 위한 리서치를 모아 새로운 신작을 만들려고 했다. «라이다 라이다 내 무덤 좀 찾아주소»는 막 관심을 가진 주제를 끝까지 해나갈 것인가 측정해보기 위해 정말 적은 인원을 모은 시연회에 가까웠다. 조금 더 발전시킨 것이 «미련»이고 이번 기회에 더 정제해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데 첫 시작과는 조금 다른 페이지의 작업이 된 것 같다.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로 빈 공간을 봐야 하는데 보지 못하는 실패의 역사에 관한 작품이다. 끊임없이 이것도 실패, 저것도 실패라고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웃음)

<인간과나>, 2021, 상영회 및 퍼포먼스 기록사진. 사진: 최윤석
끝없이 이야기를 좇으면 수많은 확장을 기대할 수 있지만 가끔 밀려드는 의문과 이야기들이 벅찰 때도 있을 것 같다.
어릴 때 혼자 생각하는 걸 진짜 좋아했다. 학교에서 아파트까지 걸으면서 한참을 생각하고도 주차장에 머물러 있었다. 떠올린 생각의 끝을 못 맺어서 해가 질 때까지 밖에 있으면 엄마가 창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엄마가 계모임에 가면 방해할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았다. 어른이 되어 한 가지 생각을 붙들고 있을 여유가 점점 없다는 걸 깨닫고 작업하면서 실컷 생각하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나는 드라마도 같은 걸 보고 또 본다. 음식도 한 가지만 계속 먹어 영향 불균형이 온 적도 있을 정도로 쉽게 질리지 않는 성격이다. 적성에 맞는다.(웃음)
믿음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접하면서 변하지 않는 믿음이 생겼다면.
변하지 않는 믿음을 생각해본 적은 없다. 믿음에 관해 좋아하는 거라면 사람들이 모여 수군수군 얘기할 때다.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 확신에 차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는 게 좋다. 내가 잘 아는 것도 아닌데 나조차 믿고 싶어진다.
Credit
- 글/ 박의령
- 사진/ 이태광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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