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서서울 미술관, 드디어 개관!

서남권에 생긴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

프로필 by 손안나 2026.03.30

우리 동네 서쪽 미술관


미술은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울 수 있을까?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가장 최신의 예술 경향을 반영하는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 금천구의 금나래중앙공원 산책로에서 미지의 관객을 기다린다.


신지선, <서서울피디아: 안양천>, 2026, AR, 컬러, 사운드.

신지선, <서서울피디아: 안양천>, 2026, AR, 컬러, 사운드.

“나무가 없어서 그래, 나무가.” 일명 ‘구디단’이라 불리는 구로 디지털 단지를 지나다가 특유의 회색 공기를 들이마시고 훅 다시 내뱉었다. 뒷맛이 텁텁한 건 기분 탓일까? 구로, 영등포, 금천.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아도 언제나 서쪽 서울이 낯설다. 1960년대 정부가 일명 구로공단이라는 한국 최초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한 이래 서울 서남권은 섬유나 봉제 같은 노동집약 산업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육중한 기계가 치워지고, IT 노동자들의 책상이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공기는 여전하다. 나무가 없다는 건 자연이 없다는 것이고, 쉼터가 없다는 것이고, 시민을 위한 문화 공간이 없다는 의미다. 서울시는 이 지역의 문화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렇게 10여 년 뒤 금천구 금나래중앙공원 한복판에 미술관이 생겼다. 디지털 산업의 거점지답게 서울시 최초의 공공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이다.

미술관은 개관특별전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를 통해, 세계적인 아티스트를 모셔 오거나 수십 명의 전도유망한 작가군을 대거포진하는 스펙터클한 기획 대신 지난 10년간의 미술관 건립 과정을 통해 서남권이라는 공간 사이에 깃든 기억을 찬찬히 더듬는 방식을 택했다. 김태동은 미술관을 손수 지은 건설노동자를 사진으로 기록하고, 신지선은 급격한 도시화 언저리의 잔존 기억을 증강현실로 재해석한다. 컨템포로컬은 이 지역을 굽이굽이 흐르던 안양천이 치수와 개발로 직선화된 맥락을 환기하며 우회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제 멀리까지 갈 수 있다’고. 이 모든 작품은 전시장을 넘어서 하역장 셔터, 잔디마당, 미술관 벽면 등 곳곳의 틈새 공간에서 이내 발견될 것이다.


하퍼스 바자 뉴미디어 특화 미술관인 만큼 처음엔 기술적으로 화려한 건축 형태가 아닐까도 짐작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독산동 풍경의 일부가 되는 단층 건물이네요.

박나운 관장 서서울미술관은 금나래중앙공원 안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설계 단계부터 공원과 조화를 이루고 확장되는 경계 없는 미술관을 지향했어요. 공원이 지역 주민들의 출퇴근길과 등하굣길로 이용되는 만큼, 보행로를 통해 일상 속에서 미술관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연도형 미술관으로 구성했어요. 기존 공원의 보행로를 유지하고 연결해 다양한 방향에서 미술관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고, 공원의 성격 위에 미술관 기능을 더해 일부러 찾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동선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원 속 미술관’을 지향합니다.

하퍼스 바자 양천구 주민으로서 서울 서쪽 지역의 독특한 분위기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해요. 서남권의 지역성을 어떻게 해석하나요?

박나운 관장 금천구, 구로구, 영등포구를 비롯한 서남권 지역은 우리나라의 근대산업 기지로 활약했던 곳이에요. 일제강점기에 경인선과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일대가 산업지구로서의 환경을 갖추게 되었고,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기에는 다수의 준공업지역이 형성되었어요. 지금도 그 성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각종 기계가 필요하고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IT 업종의 비중이 증가했지요. 제조·유통·서비스가 플랫폼화되면서 육체 노동보다 기술 기반 직무의 비중이 커지는 등 인력 구조도 변화했죠. 이를 통해 기계의 발명과 사용, 컴퓨터 기반 과학기술의 발전 등 기술 변화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고, 그에 따른 노동의 변화 양상도 함께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에요. 또 양천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등을 가로지르는 안양천의 변모를 통해 이 지역의 변천사와 생태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고요. 한편으로,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는 과거 이주민 정착지였고, 현재도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이기도 해요. 노동과 인간, 자연의 변화에 대해 사유해볼 수 있는 맥락이 주어지죠..

컨템포로컬, <일루전 사인_안양천>, 2026, 알루미늄판에 고휘도 실사 출력, 140x250cm(x2개).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 커미션.

컨템포로컬, <일루전 사인_안양천>, 2026, 알루미늄판에 고휘도 실사 출력, 140x250cm(x2개).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 커미션.

하퍼스 바자 여전히 미디어 아트, 뉴미디어 아트, 디지털 아트 등의 표현이 혼재되어 사용되는 듯합니다. 서서울미술관은 뉴미디어 아트 특화 미술관을 표방하는데, 미술관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요?

박나운 관장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분류 체계에서 뉴미디어는 “영상, 음향, 조명 등을 포함하는 예술 작품과 퍼포먼스, 무형의 개념미술, 인터넷 아트, 코딩 아트, 소프트웨어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어요. 기존의 미디어 아트에 AI 같은 첨단기술을 접목하는 것뿐 아니라, 현재 미술계에서 실험되고 등장하는 새로운 장르와 형식을 포함해 기존 시각예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뉴미디어 아트로 보고 있어요. 제 생각에 뉴미디어 아트는 기술 발전과 함께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 즉 물질과 비물질,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성찰을 함께 다루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미술관이 정의하는 뉴미디어의 개념을 연구자와 작가뿐 아니라 시민들도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퍼스 바자 개인적으론 최근 마이애미 아트 바젤에서 발표된 플랫폼 제로10으로 디지털 아트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어요. 뉴미디어 아트에 대해 당신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박나운 관장 직관적이지 않은 디지털 아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표현해낸 참신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여러 매체를 통해 흥미롭게 표현하는 데 있어 뉴미디어 아트가 기존의 시각예술보다 더 큰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있어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단순히 광고나 콘텐츠를 스크롤하며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을 통해 관람객이 과잉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경험의 질을 확보하고,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며 현대 기술의 산물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퍼스 바자 몇 년 사이 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관객층이 대거 유입되면서 미술관의 풍경이 달라졌다는 의견이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미디어 아트 작가들은 최근 들어 관객이 아주 오랫동안 집중해서 작품을 보는 현상이 흥미롭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동의하나요?

박나운 관장 다른 전시보다 긴 관람 시간이 필요한 미디어 작품에 대해 젊은 세대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은, 아무래도 이들이 미디어 사용에 익숙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작품 관람 경험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뉴미디어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런 흐름을 통해 뉴미디어 예술에 대한 접근성이 점차 확대될 수 있다고 봅니다.

하퍼스 바자 미술 애호가 중에서도 미디어 아트의 시간성을 유난히 버거워하는 이들이 있어요. 매체 특성에서 오는 장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박나운 관장 단순히 러닝타임의 길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박물관 전시에서 영상을 볼 때는 타이머 표시 등을 통해 남은 시간을 가늠할 수 있지만, 미술관의 미디어 아트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어느 시점에서 작품에 들어갔고 언제 나올 수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이런 불명확성이 관람의 부담을 키우는 것 같아요.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일 수 있어요. 미디어 아트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람객이 이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미디어 아트 감상에 대한 교육이나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람객은 작품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해보면 좋겠어요. 미술관 역시 작가와 협의해 이런 불명확성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겠고요.

김태동,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 CHAPTER. 1, 2024-202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김태동, <서서울미술관 건립 아카이브 프로젝트 2024-2026> CHAPTER. 1, 2024-2026,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하퍼스 바자 메타적 관점에선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비치는 건물 외관이 미디어 아트의 시간성을 반영하는 듯 보여서 흥미롭습니다. 미술관 곳곳에 이 같은 공간이 있나요?

박나운 관장 은색의 해머드 스테인리스스틸 파사드도 특징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유리로 마감된 1층이에요. 낮과 밤, 맑은 날과 흐린 날,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의 분위기가 유리를 통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죠.

하퍼스 바자 오늘날은 스마트폰 영상부터 고층 빌딩 전광판까지 온갖 미디어가 분열증적으로 우리를 포위합니다. 이런 시대에 미술관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박나운 관장 뉴미디어는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지만,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은 단순히 광고나 콘텐츠를 스크롤하며 보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미술관은 작가와 연구자에게는 뉴미디어 예술에 대한 연구와 실험의 장이 되고, 관람객에게는 작품을 음미하면서 그 작품이 탄생한 시대적 맥락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관람객이 과잉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경험의 질을 확보하고, 디지털 문해력을 키우며 현대 기술의 산물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해요. 우리는 ‘뉴미디어’라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예술이 지역 주민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미술계 인사와 지역민 모두가 찾는 미술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는 4월 26일(1막)과 7월 12일(2막)까지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Credit

  • 사진/ 오준섭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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