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트 전망 보고서
2026년 미술계는 어떻게 흘러갈까?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2026 아트 전망 보고서
2026년 아트 신은 어떤 흐름일까? 6인의 명민한 미술인이 흥미진진한 예측과 분석을 전해왔다.
베니스 비엔날레, 단조의 연대
불과 2년 전인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Foreigners Everywhere(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를 주제로 내걸었다.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글로벌 사우스와 디아스포라, 퀴어, 아웃사이더, 원주민 작가들을 전면에 배치하며 중심부 바깥의 목소리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선언이 전시장을 순회하는 동안, 바깥의 세계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글로벌 노스는 망명 신청자의 임시 보호 조치를 축소하고, 국경 통제를 강화하며, 영주권 취득에 요구되는 거주 요건을 상향했다. 포용의 수사가 전시 담론으로 떠도는 사이, 그 수사가 호명하는 당사자들의 법적·물리적 기반은 좁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제미술전은 더 이상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장에만 머물 수 없다. 국경과 비자, 입국 심사와 지정학적 갈등은 전시의 메시지 이전에 전시의 가능 조건을 직접적으로 규정한다. 다국적 큐레이터와 작가의 이동을 전제로 하는 제작과 설치는 언제든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정치는 작품의 표어가 아니라 전시를 성립 시키는 물질적 조건이 되어 침묵과 부재를 낳는다. 포용을 말하는 전시가 정작 그 대상의 현존을 보장하지 못합 때, 선언은 공허한 수행으로 남기 쉽다.
사진: © 베니스 비엔날레
그렇기에 2026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 ‘In Minor Keys(단조로)’가 갖는 함의는 각별하다.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에 임명된 코요 쿠오는 지난해 5월 별세했지만, 비엔날레는 그의 뜻을 이어 전시를 실현한다. 쿠오는 큐레토리얼 텍스트에서 참상의 스펙터클을 거부하며, 단조의 주파수에 귀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여기서 ‘단조’는 단순한 음악적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적 규모와 패권적 가시성, 중심부의 문법이라는 ‘장조’의 화려함에 기대지 않고도 연결을 지속시키는 연대의 양식이다. 국경이 닫히고 이동이 통제되는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거대 담론의 웅변이 아니라, 작은 연결을 끊어지지 않게 유지하는 지속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이 맥락에서 2026년을 전망하며 떠오르는 질문은, “‘단조의 연대’가 어떤 형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이다. 비자 취득이 어려운 작가를 위한 대안적 참여 방식(원격 협업, 위임 제작, 현지 파트너와의 공동 작업 등)을 설계하는 시도는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은 국제미술전이라는 무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규모 기관과 프로젝트 스페이스, 컬렉티브가 축적해온 장기적 협업 관계,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와의 연결, 아카이브와 번역을 통한 맥락의 공유는 화려한 개막식 없이도 연대의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결국 주목해야 할 것은 전시가 무엇을 말하는가뿐 아니라, 그것을 말할 수 있는 조건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 가는가이다. 단조의 음역이 요청하는 것은 단절의 압력 속에서도 연결을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고, 실제로 지속시키는 구체적 실천이다.
김호원(큐레이터, 평론가)
코요 쿠오. 사진: © 베니스 비엔날레
관계 맺기의 실험실
2026년 미술계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관계 맺느냐’가 더 크게 보이는 해다. 이미지와 메시지는 여전히 빠르게 유통되지만, 그 뒤에 붙는 질문은 점점 더 노골적이고 구체적이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편집하는가, 누가 이득을 얻는가. 그리고 전시가 끝난 뒤에도—관계는 남는가.
예컨대, 기후 위기는 이제 환경 섹션이 아니라 감각의 조건이 된다. 올해 더 자주 등장할 작업들은 ‘기후를 다룬다’기보다, 기후 속에서 살아가는 신체의 리듬을 다룬다. 폭염과 홍수 같은 사건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지연된 계절감, 불안의 템포, 사라지는 풍경의 속도 같은 것들, 그러니까 우리가 세계를 감지하는 방식이 어떻게 재조정되는지를 붙잡는다. 기후는 정보가 아니라 체감이고, 미술은 그 체감을 언어로 만들려는 가장 집요한 장르 중 하나다. 이때 자연은 더 이상 인간이 바라보는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2026년의 중요한 톤은 인간과 비인간이 얽힌 다자성이다. 동물, 식물, 미생물뿐 아니라 물질과 인프라, 알고리즘과 데이터, 에너지 시스템까지 작품의 세계관 안으로 들어오면서 작품은 단일한 발언이라기보다 관계의 실험이 된다. 무엇이 살아 있고, 무엇이 작동하며, 우리는 그 복잡한 회로 안에서 어떤 책임을 지는가. 인간의 의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전시는 어떤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가. 이 질문이 올해의 ‘세련된 난제’처럼 남는다.
그리고 2026년, 토착(Indigenous) 쟁점은 더욱 빈번하게 호출될 가능성이 크다. 이 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정체성 정치의 표면 때문이 아니라, 토착의 관점이 기후 위기의 시대에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기술’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땅과 물을 소유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기억, 돌봄, 공동체의 층위로 이해하는 방식은 식민성, 개발, 자원 채굴과 착취, 경계와 이주의 문제와 직결된다. 결국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어디에 살 권리가 있는가? 무엇을 지키는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존재할 것인가? 물론, 이 모든 키워드는 너무 쉽게 좋은 가치로 포장되어 전시의 장식이 되기도 한다. 기후와 토착은 특히 그렇다. 그래서 올해 더 중요해지는 건 어떤 이미지를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느냐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실제로 주도권을 갖는지, 협업이 단발성 소비로 끝나지 않는지, 리서치가 필요한 것만 가져가고 떠나는 추출적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지. ‘대표’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할수록, 누가 지워지고 있는지를 더 예민하게 봐야 한다. 결국 2026년 미술은 거대한 선언의 볼륨을 낮추고, 더 미세한 감각의 음역으로 이동한다. 단일한 해답 대신 여러 존재가 공존하는 조건을 제안하는 쪽으로. 듣기, 함께 쓰기, 돌보기, 오래 관계 맺기—기후 위기와 다자성, 토착의 쟁점은 올해의 테마가 아니라 전시의 ‘방법론’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론이야말로, 지금 같은 세계에서 미술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의 가장 현실적인 형태로 보인다.
추성아(독립 큐레이터)
사진: Getty Images
작아지는 전시, 늘어나는 학교
2025년 연말, 홍제동의 한 집에서 «포옹»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두산갤러리에서 ‘진행 보조’로 일했던 큐레이터 이예인이 자기 집을 잠시 전시장으로 바꿨다. 공공 기금을 받지 않고 치러진 이 전시는 예약제로 운영되었고, 애호가와 종사자들 사이에선 작은 화제였다. 같은 시기, 큐레이터 임나래와 이려진 작가가 운영하는 ‘사유지’에선 마이크로+북클럽을 꾸렸다. 조숙현 큐레이터가 쓴 <가까운 미술>을 저자와 함께 읽는 이 모임은 선착순 3명으로 인원을 제한했다.
광주, 부산, 베니스까지 올해 비엔날레 현장에선 더 크고 더 대단한 기획이 자웅을 겨룰 테지만 나는 우리가 점점 더 작아지는 전시를 보게 될 거라 예상한다. 기금지원서와 심사위원회를 벗어난 전략들이 늘어날 거라 본다. 이건 단순히 권위를 벗어나려는 제스처가 아니다. 공간을 빌려 전시를 여는 건(공공 기금의 지원을 받는다 한들) 도무지 투자 대비 효용을 거둘 수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까, 한쪽에선 블록버스터 전시가 연달아 열리는 사이, 다른 쪽에선 자기가 사는 집을 임시 전시장으로 삼는다. 규모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친밀함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 전시가 작아지는 동안, 미술계는 대(大) 학교 시대를 맞이하는 중이다. 큐레이팅 스쿨 서울은 2013년에 0학기를 진행한 뒤 활동을 멈췄다가 2025년에야 1학기를 시작하며 돌아왔고, 2026년엔 ‘학교’를 주제로 2학기를 진행한다. 1999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한 대안공간 루프는 홍대 앞에서 을지로로 공간을 이전하며 2026년 1월부터 ‘페미니스트 아트 스쿨’을 시작했다. 최태윤 작가가 이끄는 포에버 갤러리의 ‘새로운 태양들’ 프로그램은 “한국의 동시대 미술과 미술 교육 시스템을 재사유하려는 욕망”이 자신의 출발점이라고 밝힌다. 심지어 광주비엔날레 재단도 오랫동안 운영을 멈췄던 국제 큐레이터 코스를 다시 시작했다. 글로벌 아트 신에서 ‘교육적 전환’이라는 담론이 유행할 때 전 세계 대안적 학교를 인터뷰했던 책 <학교>(2015)는 2026년에 한국어 번역판 출간을 앞두고 있다.
겉보기엔 반대인 이 두 흐름의 원인은 같다. 전시는 비싸고, 학교는 그보다 저렴하다. 전시는 일회적이고, 학교는 지속된다. 전시는 관객을 모으고, 학교는 관계를 만든다. 2026년, 미술계의 중요한 일들은 비엔날레가 아니라 작은 전시장이나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학교’ 한쪽에서 일어날 것이다. 다음 시대의 미술은 그곳에 있다.
박재용(미술 저널리스트)
에텔 아드난. 사진: © White Cube (PatrickDandy )
더, 더, 더 많은 여성 미술가
힐마 아프 클린트와 같은 작가들이 미술사의 정전이라 할 만한 서사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비엔날레의 예술감독으로 여성 큐레이터가 등장하며, 옥션에서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여성 미술가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는 미술사에서 간과된 작가들의 작품 세계가 조명되고 있으며, 신진 여성 작가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올 한 해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가 다수 예정되어 있다.
먼저, 화이트 큐브는 레바논 출신 작가 에텔 아드난과 재불 1세대 추상화가 이성자의 2인전 «태양을 만나다(To meet the sun)»를 개최했고, 아라리오 갤러리에서는 지난해 타계한 박영숙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박영숙은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독보적인 사진 작품으로 남성 중심적 관습에 도전한 작가다. 3월 호암미술관에서는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70여 년 예술 세계를 다루는 첫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은 3년 전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통해 김윤신 작가를 널리 알렸으며, 올해 7월에는 조숙진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조숙진 작가는 1980년대 후반 미국으로 이주해 국제적으로 활동해온 작가로, 그의 설치, 퍼포먼스, 건축 프로젝트 및 드로잉 등 국내 미공개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다.
국제갤러리에서는 장파 개인전 «Gore Deco»를 통해 여성적 그로데스크를 선보이고 있으며, 3월에는 캐나다 출신 한국계 여성 작가 로터스 L. 강의 국내 첫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5월 9일 개막하는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전시인 «해방공간: 요새와 둥지»(가제)를 위해서는 최빛나 예술감독과 최고은, 노혜리 작가 세 명이 협업하고 있다. 이들은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일제강점기와 해방 초기의 혼란과 희망이 교차하던 시공을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연결 및 연대에 대한 사유와 회복력을 감각하는 기념비”로 제안한다.
김윤신. 사진: © 리움미술관
5월 리움에서는 전 세계 1세대 여성 설치미술가들의 빛, 소리, 일상적 소재 등을 활용한 실험적 시도를 강조하는 전시 «환경, 예술이 되다»가 열린다. 특히 주디 시카고와 마르타 미누힌 같은 작가들의 혁신적인 작품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8월 말 개막하는 부산비엔날레는 아말 칼라프와 에블린 사이먼스가 공동 감독으로 ‘저항, 치유, 돌봄’을 주제로 하여 부산 전역에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9월 초, 프리즈 위크에는 갤러리 현대에서 한국계 미국인 작가 김 크리스틴 선 개인전이 개최된다. 또한, 국제갤러리에서는 오늘날 도시 환경에서 나타나는 시공간적 변화를 회화로 탐구하는 김세은의 첫 개인전이 열리고, 지갤러리에서는 최윤희 작가, 피비갤러리에서는 양자주 작가가 몸이 체험한 감각을 추상화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상반기에 평생에 걸쳐 ‘빛’을 원천으로 삼아 회화적 실험을 전개해온 방혜자 작가를 다루고, 하반기에는 시카고미술관과 협력하여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할 예정이다. 최재은 작가의 국내 첫 국공립미술관 개인전 «최재은: 약속(Where Beings Be)»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10월 미국의 원로 여성 미디어아티스트 린 허쉬만 리슨의 60여 년 작업을 아시아 최초 미술관 개인전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안동선(미술 전문 기자)
새로운 돈의 흐름
미술시장은 자본의 흐름과 큐레이션의 변화가 맞물리며 주기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열어왔다. 2026년은 아트 바젤 카타르의 첫 개최(2월, 도하), 홍콩(3월), 그리고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3월)를 축으로 이러한 변화가 집약되는 시점이다. 2025년 말 뉴욕 경매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70% 반등했으며, 초부유층(UHNWI)의 자산 포트폴리오 내 미술 비중 또한 15%에서 20%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2026년 글로벌 미술시장은 전반적으로 완만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시장 내부를 세분화해 보면 고가 작품과 중저가 작품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K자형 구조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카타르 국립 박물관 전경. Courtesy of Art Basel.
카타르 도하에서 처음 개최된 아트 바젤 카타르는 87개 갤러리가 참여하였으며, 기존의 부스 중심 형식을 탈피했다. 큐레이터 왈 샤우키가 이끈 ‘변화의 서사’라는 주제 아래, 보다 자유로운 전시 구조를 도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카타르 뮤지엄과 정부, 그리고 투자 자본은 지역 박물관 전시와 연계해 중동과 남아시아 예술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상업적 거래보다는 문화적 담론을 선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는 초기 아트 바젤 홍콩의 성격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아트 바젤 홍콩은 아시아 상업 허브로서의 입지를 유지하는 동시에, 큐레이션 패러다임을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하는 구조 조정에 나서고 있다. 특히 ‘엔카운터스’ 섹션에서는 기존의 서구 중심 단일 큐레이터(알렉시 글라스 캔터)에서 벗어나, 모리 미술관의 마미 카타오카를 중심으로 한 4인의 아시아 큐레이터 그룹이 프로그램을 이끈다. 홍콩 M+의 이사벨라 탐, 인도네시아의 알리아 스와스티카, 일본의 히로카즈 도쿠야마가 참여해 대형 설치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아시아 내부의 교차적 시각과 디아스포라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다. 새롭게 신설된 ‘에코스(Echoes)’ 섹션은 최근 5년 이내 제작된 작품에 집중함으로써, 미술시장의 최신 흐름과 실시간으로 호흡하려는 전략적 의지를 드러낸다.
홍콩은 세계 미술품 수입 규모 2위라는 지위와 함께, IT 및 디아스포라 기반 수집가들의 안정적인 거래 구조(중간 거래가 약 9만7천 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임대료와 정치적 불확실성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에코스’와 ‘엔카운터스’ 섹션이 제시하는 서사는 뮤지엄과 비엔날레의 관심을 끌어들이며, 거래와 경험을 결합하는 시도다. 그 결과 홍콩은 카타르의 제도 중심 모델과 뉴욕의 담론 우위 사이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 게이트키퍼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뉴욕 아트 신은 휘트니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모마(MoMA)의 뒤샹 회고전과 뉴 뮤지엄 재개관이 맞물리며 제도 전시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블럼&포(Blum & Poe), 클리어링(Clearing), 비너스 오버 맨해튼(Venus Over Manhattan) 등 일부 갤러리의 폐쇄에도 불구하고, 제도권은 여전히 시장의 심리적 앵커로 기능하며 글로벌 고액 수집가와 주요 유산 매물을 다시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시장에서는 소장 이력, 미술사적 맥락, 수공예적 가치가 다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이는 새로움과 속도에 매료되었던 지난 몇 년을 지나, 미술시장이 다시 ‘퀄리티’를 우선하는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블루칩 작품의 진위 보증과 장기적 투자 안정성은 핵심 가치로 부상했으며, AI 생성 이미지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직물이나 세라믹 설치 작업 등 인간의 손을 통해 구현된 물성과 불완전성이 상위 수요를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뉴욕 경매 낙찰가 기준으로 20~50%의 프리미엄 상승을 동반하며, 미술시장의 K자 구조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박민경(아트 어드바이저, 성수나무 대표 )
카르멘 드 몬테플로레스, <Four Women> (ca. 1969). 사진: Philip Maisel. Courtesy of the artist.
초개인화 이후... 헤리티지와 동시대성
한동안 미술계는 ‘초개인화(Ultra-Personalization)’라는 개념에 강하게 끌려왔다. 알고리즘은 관객의 취향을 세밀하게 분류했고, 전시는 동선과 반응 데이터를 반영해 맞춤형 경험을 설계했다. 미술 역시 개인에 의해 반응하는 시스템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기였다. 이렇게 초개인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미술은 새로운 질문 앞에 서 있다. 지나치게 개별화된 경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함께 느낄 수 있는가. 모두에게 맞는 전시는 사라졌지만, 동시에 모두가 각자의 감각 안에 고립되어 있다는 인식 또한 분명해졌다. 2026년을 향한 미술계의 흐름은 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
이는 초개인화에 대한 반동이라기보다, 그 이후의 단계에 가깝다. 개인의 취향은 여전히 전시 경험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미술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최근의 전시는 이 선별된 취향을 만족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서로 다른 감각들이 같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어떻게 교차하고 경험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작품을 ‘보는 방식’보다, 사람들이 함께 반응하고 머무는 경험의 구조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26년 미술계를 관통할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헤리티지와 동시대성의 결합’이다. 오늘날 헤리티지는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이 작동하는 가장 현실적인 기반으로 기능한다. 오래된 장소와 축적된 기술, 설계도와 기록, 손의 감각은 시간 속에서 검증된 구조로서 현재를 다시 읽게 만든다. 특히 동시대 미술에서 새로움은 더 이상 미래적인 형식만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장소의 이색성보다, 이미 축적된 시간과 맥락이 어떻게 동시대적 해석의 구조로 작동하는지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과거를 재현하는 전시가 아니라, 과거의 시간 위에 현재를 겹쳐놓는 방식에 가깝다. 헤리티지는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각이 개념으로 작동하는 플랫폼이 된다. 초개인화 이후의 미술이 다시 공동의 감각을 향하고 있다면, 헤리티지는 그 감각이 작동할 수 있는 신뢰 가능한 구조다.
2026년의 미술은 새로움을 증명하기보다, 이미 축적된 시간과 맥락을 어떻게 현재의 언어로 전환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이는 미술이 우리에게 무슨 경험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묻는 국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특정 미학이나 양식의 유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술이 사회와 공간, 관객과 맺는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에 가깝다. 이제는 무엇을 새롭게 보여줄 것인가보다, 어떤 감각을 함께 작동하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이 앞으로 전시와 프로젝트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최인선(바그네리안 디렉터)
Credit
- 에디터/ 손안나
2025 겨울 패션 트렌드
#겨울, #윈터, #코트, #자켓, #목도리, #퍼, #스타일링, #홀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