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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임애지

LA 올림픽을 향한 임애지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프로필 by 안서경 2026.01.27

THE FIGHTING


용기를 주는 세 편의 파란만장 분투기. 당신도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 일어서기를.


니트톱은 Diesel. 팬츠는 Be Just Hug. 슈즈는 Converse. 귀고리는 KVK. 글러브는 선수 소장품.


임애지


한국 여자 복싱 최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임애지를 수식하는 이 말은 한 번도 그가 안주하거나 머무른 적이 없다는 걸 증명한다. 2024년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54kg 체급에서 임애지는 동메달을 받으며 12년 만에 복싱 부문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존재를 각인시켰다. 다가올 2028 LA올림픽 출전을 앞두며 훈련을 하던 와중에 만난 그는 성취의 무게를 알고 있지만 복잡한 셈 없이 뜨겁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내던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올림픽같은 큰 무대에서 링에 오르기 전까지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으면 힘이 난다는, 당찬 1999년생 복서. 2020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올림픽 3회 연속 출전의 새로운 꿈을 품은 그에겐 단단한 중심과 유연한 태도에서 나오는 특유의 여유가 흘렀다.


하퍼스 바자 지난가을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파리올림픽 이후 새롭게 설립된 국제 복싱 기구인 월드 복싱 주관으로 열린 경기였기에 의미 깊은 성과였고, 복싱선수 임애지가 명실공히 세계적인 선수인 걸 보여주는 자리였다.

임애지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던 대회였다. 이전에 느끼지 못한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동메달을 따고 결승전 경기를 보는데, 두 선수가 너무 잘하더라. ‘내가 어떻게 해야 둘을 이길 수 있을까?’ 머릿속에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하퍼스 바자 오늘 촬영장에 들어설 때부터 미소가 끊이지 않을 만큼 잘 웃는 성향이던데. 헤드기어를 쓰고 링 위에만 서면 표정이 달라진다.

임애지 링 위에선 생존 본능이 발동한다. 복싱은 ‘아, 졌다’가 아니라 ‘아, 아프다’라고 직관적으로 느끼는 종목이니까, 집중을 잃는 순간 바로 타격을 받는다. 스텝을 많이 뛰는 편인데, 그 이유도 힘센 상대에게 덜 맞기 위해 발전한 거다. 뭐든 좋아하면 깊이 파는 성격이고, 자존심도 엄청 센 편이다. 특히 얼굴에 상처가 나는 걸 정말 싫어한다. 맞았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게 되는 게 싫다. 세계선수권 대회 때도 넘어져서 난 상처를 맞아서 생긴 상처라고 여길까봐 조금 억울했다.(웃음)

하퍼스 바자 올림픽 직후, 국내 전국체전 여자 선수의 체급 기준이 국제 대회와 다르다는 사실을 토로해 화제였다. 올림픽 여자 복싱은 총 7개 체급(LA 올림픽 기준)으로 운영되는데, 전국체전에는 3개 체급밖에 없어 몸무게 증량과 감량을 반복해야 했다고. 최근 대한체육회가 이를 반영해 세부 종목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는데, 소감이 어땠나?

임애지 소식을 듣고 너무 감사하고 기뻤다. 우리나라 여자 복싱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메달을 받고 나면 꼭 그 고충을 얘기하고 싶었다. 남자 선수들도 여자 체급이 51, 60, 75kg 총 3개뿐이었다는 것을 몰랐다더라. 올림픽을 포함해 해외 대회에서는 54kg 체급에 출전했다가 국내에서는 60kg에 참여해야 했는데 시간 간격이 2주 정도라서 늘 찌웠다, 뺐다를 반복하며 몸이 계속 망가지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그 조절이 수월했기에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퍼스 바자 체급이 늘어야 여자 복싱선수의 파이도 늘어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임애지 선수가 없기에 체급이 적은 게 아니라, 체급이 선수를 반영하지 못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언니 보면서 복싱 시작했다”고 말해주는 분들이 늘었다.(웃음) 예전에는 뛰어난 해외 경기를 직접 가야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경기 영상을 접하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전체적인 복싱 경기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체감한다.

하퍼스 바자 2017년 세계 여자 주니어 복싱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복싱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중학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하고 몇 년 만에 거둔 결과였는데, 처음부터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임애지 태어나서 제일 시합을 많이 뛰던 시간이었는데, 처음이라 그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도 몰랐다.(웃음) 첫 경기의 상대 선수가 홈그라운드여서 함성이 엄청나던 기억이 난다. 코치님은 3라운드 동안 버티기만 하라고, 다운만 안 당해도 잘한 거라고 하는데 “저 지러 온 거 아닌데요?” 그랬다. 지금도 국가대표 팀에 같이 계신 코치님인데, 늘 그때 얘기를 꺼내곤 한다. 남들이 하는 말에 신경쓰기보다 항상 ‘어제보다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되새기려 한다. 어떤 날은 스스로 만족하고 링에서 내려왔는데 코치님은 왜 못했냐고 그럴 때도 있는데, “저 원래는 이것보다 잘하는군요?” 하고 털어내곤 한다.

하퍼스 바자 판정으로 승패가 판가름나는 복싱에 최적화된 멘탈 같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판정 결과를 알 수 없는 점이, 관객들에겐 경기의 묘미 중 하나지만 선수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이겠다.

임애지 복싱은 VAR, 비디오 판독이 없다. 그래서 한 번 나온 경기 결과는 결코 번복이 안 된다. 아무리 억울해도 변하는 게 없다. 받아들일 수밖에. 아슬아슬하게 지면 물론 슬럼프에 빠질 수 있을 만큼 힘들 때도 있다. 간혹 코치님이 “네가 이긴 경기인데” 말하면 “그런 말 해주지 마세요” 그런다. 못해서 졌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드니까, 그게 훨씬 낫다.

하퍼스 바자 처음 복싱장에 들어선 순간이 기억나나?

임애지 부모님께서 ‘살아가는 데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운동을 접하게 하셨다. 친동생도 작년까지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였을 만큼 운동 DNA가 있는 집안 같긴 하다.(웃음) 처음 복싱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가 절대 안 된다고 하셔서 청개구리처럼 반항심과 오기가 생기더라. 초등학생 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중학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복싱장을 다니게 됐는데 부모님을 앞에 두고 저녁마다 섀도 복싱을 보여줬다.(웃음) 그러다 선수가 안 된다면 관두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선수를 하게 됐다.

하퍼스 바자 그 시절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애지 생각보다 오래 할 거니까 몸 관리를 잘해라.(웃음)

하퍼스 바자 겁도, 엄살도 많은 편이라고 밝힌 적 있는데,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이었나?

임애지 나는 복싱을 ‘예술 게임’이라고 말한다. 원투, 훅. 복싱 기술은 이게 끝이다. 그래서 이 한정적이고 단순한 기술을 응용할 때, 변수가 무궁무진하다. 관객이 봤을 때 예측이 안 되는 퍼포먼스가 나오기도 하고, 같은 동작이라도 속임수가 필요할 때도 있고. 그래서 격투 스포츠지만 표현 종목이라 생각한다. 이따금 경기 전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경기 보여드리겠다”고 말하는데, 내 머릿속에서 수 십 번, 수백 번 그린 표현을 제대로 보여줄 때 재미있는 경기가 된다고 믿는다. 파리올림픽 메달 확정 경기는 내가 예측한 그대로 상대의 퍼포먼스가 나온 경기였다. 밥 먹을 때도 상대의 얼굴과 경기 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는데, 예상한 대로 경기 결과가 나왔다. 엄청 짜릿한 경험이었다.

하퍼스 바자 “복싱에선 되는 대로 휘두르는 펀치보다 통제와 절제가 더 가치 있다.” 여자 복서에 관한 소설 <헤드샷>에 나오는 구절 중 가장 공감한 구절이다. 특히 복싱은 상대의 전략을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한 방을 던지는, 절제의 미학을 요하는 스포츠라 생각한다.

임애지 무엇보다 침착함이 필요한 스포츠다. 복싱을 떠올리면 달려드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역설적이게도 그걸 참아야 간결한 한 방이 나온다. 시합장에서나 연습장에서 코치님들이 “침착하게 해”라는 말을 많이 하는 이유다. 흥분하면 동작이 커져 허점이 보이거든. 예전에는 ‘많이 공격하자’를 목표로 삼았다면 지금은 ‘정확하게 때리자’를 가장 우선으로 삼는다.

하퍼스 바자 슬럼프를 맞이한 순간도 있었나?

임애지 올림픽 직전 해였던 2023년도에는 계속 지기만 했다. 처음으로 ‘운동선수로서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체급을 54kg으로 내리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가 첫 판에서 지고,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전국체전 60kg을 준비했는데 또 졌다. 어린 나이에 주니어 금메달을 따고 나서 시니어 선수가 되었을 때, ‘처음부터 졌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기계발서를 잡히는 대로 읽었다. <오타니 쇼헤이의 쇼타임>을 읽으며, 매일 연습하다보면 오늘 성공할지, 내일 성공할지 기대된다는 가르침을 얻으며 위안받았다. “내가 퇴장만 안 하면 누군가는 나를 본다.” <타이탄의 도구들>에 나오는 이 문장은 힘이 들 때마다 찾아 보는 구절이다.

하퍼스 바자 스물여덟 살, 인간 임애지의 취미는 무엇인가?

임애지 메모하기! 종종 블로그도 한다. 시합 나갔을 때 경험도 쓰고. 생각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생각이 복잡해지면 몸도 무거워지니까. 불닭, 마라샹궈, 매운 음식 맛집을 찾아가는 것도 좋아한다. ‘미역붉닭볶음탕면’을 먹어보고 싶다!

하퍼스 바자 화순군청 소속 선수로 바쁜 와중에,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 전공에도 입학했다.

임애지 복싱을 하며, 진심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선수를 바라봐주는, 믿고 따를 수 있는 코치 선생님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복싱에서 선수와 코치는 서로 전략을 공유하고 전적으로 믿어야만 그 동작을 구현할 수 있다. 국가대표 경기를 함께해온 한순철 선생님과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아무리 소란한 경기장에서 오디오가 겹쳐도 선생님 말만 들릴 때가 있다. 석사를 스포츠 코칭으로 전공하게 된 것도, 경기 중 코칭 행동에 따라 선수의 퍼포먼스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연구해보고 싶어서였다. 선수를 사람 자체로 봐주고, 복싱뿐만이 아니라 삶에 응용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신 분들이 많다. 슬럼프에도 “지금은 그래프가 계속 내려가지만 멀리서 보면 올라가고 있다”는 코치 님의 말이 큰 위안이 됐다. 각자만의 속도, 방법으로 성장하는 건 너무 특별한 일이니까. 언젠간 선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하퍼스 바자 “복싱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복싱은 내 생활의 일부다”라고 말한 적 있다. 그 말은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나?

임애지 여전히 경기가 잘 안 풀리면 너무 힘들고, 스파링을 잘하면 너무 기분이 좋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힘이 든다는 사실이 억울할 때도 있지만 건강하게 복싱과의 관계를 맺으려면 적당한 거리감을 갖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좋아하는 복싱을 오래하기 위해서.


저지는 Adidas. 톱은 Hoopoe. 팬츠는 Le Fame. 귀고리는 KVK. 핸드랩은 선수 소장품.


Credit

  • 사진/ 김형상
  • 헤어&메이크업/ 장하준
  • 스타일리스트/ 이명선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