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색을 통해 현재를 반영한 패션계

낙관적이면서도 자기 표현의 욕망을 담은 이번 시즌의 컬러 팔레트

프로필 by 윤혜연 2026.04.06

아직 완연한 봄의 공기가 느껴지지 않건만 2026 S/S 런웨이는 이미 색(色)으로 폭발했다. 로에베와 프라다는 컬러를 블록처럼 배치했고, 베르사체는 특유의 에너지에 더 강렬한 색을 입혔다. 톰 포드의 테일러링 수트는 비비드한 색으로 날카롭게 반짝였고, 발렌티노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그다운 조합으로 컬러의 존재감을 부각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프린지로 볼륨을 극대화한 드레스에 핑크와 민트 컬러를 더해 화사한 무드를 배가한 모습. 오랜만에 돌아온 봄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반갑다는 감정 뒤 질문이 따라온다. 왜 지금, 다시 컬러일까.

실마리는 현실적인 조건에 있었다. 몇 시즌째 이어진 불확실한 경제 환경 속, 우리는 덜 사고 덜 바꾸며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패션이 꺼내 든 해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바로 컬러 포인트다. 전면적 변화를 제안하기보다 가장 적은 움직임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방법을 택한 것. 실루엣을 새로 짜지 않아도, 소재를 갈아엎지 않아도 된다. 옷장을 유지한 채 이미지를 바꾸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이번 시즌 컬러는 대담한 실험이 아니라, 현실을 정확히 읽은 선택에 가깝다.

SNS 속 트렌드 과잉에 대한 피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몰개성적 트렌드 홍수 속에서 컬러는 별도의 설명 없이도 감각을 먼저 사로잡는 강점이 있다. 사실 최근 몇 시즌 동안 패션은 지나치게 많은 맥락을 요구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지속가능성, 젠더, 삶의 태도, 매달 새롭게 등장하는 ‘~코어’다. 결국 트렌드는 감상보다 해석을 필요로 했으며, 옷은 입기 전부터 이해해야 할 개념이 됐다. 가령 ‘드뮤어’ 룩은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설명해야 했고, ‘팬츠리스’는 몸을 드러내 마음을 해방한다는 문화적 의미를 덧붙여야 했다. 무엇을 입는지보다 왜 입는지를 말해야 했던 셈이다. 반면 컬러는 다르다. 말하자면 미학적 휴식과 같다. 배경을 몰라도, 맥락을 이해하지 않아도, 보는 순간 인상이 먼저 도착한다. 이번 시즌 컬러 플레이는 그래서 표현의 과잉이 아니라, 설명에 지친 감각을 잠시 쉬게 하는 선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우치아 프라다의 오래된 철학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패션은 장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드러내는 언어”라는 그의 믿음이 컬러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메시지를 증명하지 않아도, 감각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잇따른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조용함은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는 선언도 컬러 플레이를 부상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사람들이 침묵 대신 컬러를 활용해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한동안 사랑받던 무채색과 ‘조용한 럭셔리’는 침묵이나 무관심, 더 나아가 회피로 읽히기 시작했다. 그 빈자리를 컬러가 채웠다. 빠르게 스크롤하는 플랫폼 환경에서도 가시성 높은 컬러는 가장 분명한 신호로 작동했다. 실제로 최근 패셔니스타 계정을 추천하는 뉴스레터나 플랫폼을 살펴보면, 아델라 카스파노바와 티네 반 카우웬베르제 등 컬러를 능숙하게 다루는 인플루언서들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눈에 남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표현이 되는 시대다. 저명한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스(Tim Blanks)는 런웨이를 “시대의 정서가 가장 빠르게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말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2026 S/S의 컬러 플레이는 낙관의 선언도, 현실 도피도 아니다. 의미 과잉에 대한 피로, 위축된 소비 환경, 그리고 더 또렷해진 자기 표현의 욕망이 만난 결과다. 덜 사고, 덜 설명하되, 더 잘 보이기 위해. 이번 시즌의 컬러는 디자인의 일부가 아니라, 오늘날을 가장 선명하게 반영한 방증에 가깝다.


Credit

  • 사진/ Lauchmetrics
  • 디자인/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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