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회 칸영화제, 한국 영화의 존재감이 유독 강렬한 이유
박찬욱 심사위원장부터 나홍진의 '호프', 연상호의 '군체'까지. 올해 칸은 유독 한국 영화의 존재감으로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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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개막과 동시에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 나홍진의 《호프》, 연상호의 《군체》, 정주리의 《도라》가 연이어 주목받는 중이다.
- 박찬욱 감독의 심사위원장 데뷔와 함께, 한국 영화계가 올해 칸의 주요 흐름을 이끌고 있다.
배우 구교환 / 쇼박스 제공
칸은 스크린 안의 세계 그 이상의 것들을 남긴다. 레드카펫 위 배우들의 표정, 상영 직후 터지는 박수, 언론과 평단의 별점, 눈물과 감동,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끊이질 않는 무성한 소문들까지. 올해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5월 12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올해 경쟁 부문에는 22편이 이름을 올렸고, 피터 잭슨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자로 발표됐다. 올해는 특별하게도 한국 영화계에도 꽤 굵직한 장면이 많다. 박찬욱 감독은 한국인 최초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이 됐고,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황금종려상을 향한 레이스에 본격 뛰어들었다.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됐고, 정주리 감독의 《도라》는 감독주간에서 관객을 만났다. 주목할 만한 칸의 첫 주를 기억할 만한 다섯 가지 장면으로 정리했다.
사진/ 스크린 데일리 공식 사이트 캡처
#1 밤, 연상호의 군체
영화 '군체' 감독 및 출연진 / Getty Image
현지 시간으로 지난 15일 밤,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공식 초청 부문은 미드나잇 스크리닝. 말 그대로 한밤에 상영되는 영화다. 관객과 평론계의 즉각 반응이 먼저 나오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장르 영화가 주목받고 가장 생기있게 살아나는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에서 봉쇄된 건물 안에 고립된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SF 스릴러로,. 연상호 감독이 익숙하게 다뤄온 세계다. 상영 분위기는 새벽을 뜨겁게 달궜다고 전해졌다. 7분간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배우 구교환 / Getty Image
배우 전지현 / Getty Image
레드카펫 위에서도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 ‘군체’의 주연배우 구교환이 레드카펫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황동만”을 외치며 환호했다. 구교환이 등장하자 현장에서는 그가 맡은 캐릭터 이름을 부르는 환호가 나왔고, 전지현과 구교환은 미리 완벽히 합을 맞춘 듯한 포즈로 웃음을 만들었다. 칸 레드카펫을 조금 덜 엄숙하고 훨씬 재밌게 만든 순간이었다. 마치 칸 영화제 2회차 같은 자신감과 너무 힘주지 않은 여유를 보여 “역시 구교환”이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는 후문이다.
(왼쪽부터) 신현빈, 전지현, 구교환 / 칸 국제영화제 공식 SNS
#2 올해 칸의 뜨거운 물음표, 나홍진의 호프
영화 '호프' 포스터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올해 한국 영화의 가장 큰 카드는 단연 《호프》다. 나홍진 감독의 SF 스릴러.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곡성》 이후 오래 기다린 신작이고, 한국 영화로는 오랜만에 칸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이다. 영화는 상영 전부터 여러모로 극적이었다. 촬영은 2024년 3월 마무리됐지만, 후반 작업이 길어지며 칸 출품 마감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다고 알려졌다. 칸은 작품성을 고려해 제출 기한을 조정했고, 결국 《호프》는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고.
공식 상영 후 반응은 무척 뜨거웠다. 장르적 에너지와 밀어붙이는 힘에 열광한 쪽이 있는가 하면, 과잉된 전개와 후반부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반응도 있었다. 실제로 월드 프리미어 공식 상영 직후 화제작으로 떠올랐으며 공식 소식지 별점에서도 상위권에 안착했다. 하지만 칸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만장일치를 얻는 영화가 아니다. 참고로 영화의 북미 배급은 네온이 맡았다. 《기생충》,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추락의 해부》처럼 칸과 오스카 레이스에서 강한 작품을 다뤄온 배급사다. “네온이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해볼 만하다.
영화 '호프' 나홍진 감독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3 심사위원장석에 앉은 박찬욱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이 된 박찬욱 감독 / Getty Image
2022년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한국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경쟁 부문 작품들을 심사한다. 그를 포함해 클로이 자오, 데미 무어, 루스 네가, 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함께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세계적인 거장 감독들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22편의 영화를 심사한다. 한국 감독이자 심사위원장인 박찬욱은 인터뷰에서 그의 비전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혔다. "예술과 정치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배제하거나 우대해서는 안 되며, 결국 예술적 성취가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 칸이 정치적 발언의 장이 되기보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원론을 다시 꺼냈다는 신호로 읽힌다. 박찬욱 감독은 개막식 당일부터 여유롭고 당당한 모습으로 무대 중앙에 섰다. 박 감독은 지난 17일 영화제 기간 중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최고 등급인 '코망되르'를 수여받았다. 훈장은 예술 및 문학 분야에 공헌한 인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한국인이 코망되르 훈장을 받은 것은 역대 네 번째다.
'코망되르' 훈장을 받는 박찬욱 감독 / Getty Image
#4 한국 여성 감독의 저력, 정주리의 도라
영화 '도라' 포스터 / 쏠레어파트너스 제공
《도라》는 서울을 떠나 한여름 바닷가 별장으로 향한 가족이 머무는 동안, 알 수 없는 병을 앓던 주인공 도라가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도연과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안도 사쿠라가 주연을 맡았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 집행위원장 줄리앙 레지(Julien Rejl)는 《도라》를 “1900년 프로이트의 도라 사례 연구를 자유롭고 동시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 “매우 유명한 케이스를 현재의 한국으로 옮겨온 작품으로, 한 젊은 여성의 욕망과 그 욕망의 문제가 영화의 핵심에 있다”고 밝혔다. 정주리 감독은 장편 데뷔작 《도희야》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다음 소희》가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된 데 이어, 《도라》까지 칸영화제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 영화 역사상 여성 감독이 장편 영화 3편 모두 칸에 올린 것은 정주리 감독이 처음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상영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김도연은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던 중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성 감독의 저력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장면이 아니었을까.
영화 '도라' 스틸컷 / 쏠레어파트너스 제공
#5 어디까지 갈 거예요? 산드라 휠러의 마력
배우 산드라 휠러 / Getty Images
배우 산드라 휠러 / Getty Images
경쟁 부문 초반 가장 빠르게 이름이 오르내린 배우 중 하나는 산드라 휠러다. 그가 출연한 신작 《파더랜드》는 소설 ‘마의 산’을 집필한 20세기 문호 토마스 만과 그의 딸 에리카 만을 둘러싼 이야기로 알려졌다. 칸영화제 참석 기자들이 늘 주목하는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데일리 그리드 평점에서 3.3점으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스크린데일리의 3점 이상 평점은 저널리스트와 평론가로 구성된 10여명의 평가자 대다수가 만점이나 3점을 줘야만 겨우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 배우의 출연작이 글로벌 영화제에서 연속적으로 최고점을 받는 일은 쉽게 이루기 어려운 성과다. 그의 전작 《로즈》도 스크린데일리 베를린영화제 평점 1위를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또한 그는 이미 영화 《추락의 해부》로 2023년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칸에 동시 진출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도 최고의 배우 자리에 올랐다. 이어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도 열연을 펼쳤다. 이번 칸에서의 잔드라 휠러가 거둘 성적표는 어떨지 귀추가 주목된다.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경쟁 부문 수상작은 오는 23일 마지막날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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