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크라운 타워 시드니에서 누리는 겨울 호주의 낭만

아침 러닝, 한낮의 보송한 산책, 다채로운 미식, 호텔에서 먹고 마시며 누리는 호사. 크라운 타워 시드니(Crown Towers Sydney)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4.07.23
호텔 5층에 위치한 풀. 45미터 길이를 자랑한다.

호텔 5층에 위치한 풀. 45미터 길이를 자랑한다.

떠나는 날 한국은 비를 잔뜩 머금은 채 습하기만 했다. 캐리어를 끌고 조금만 걸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날씨. 호주에 대한 기대에는 한창 겨울이라는 그곳의 날씨가 컸다. 시드니로 가는 항공편은 늦은 저녁 또는 이른 아침 두 가지 선택지로 나뉜다. 전자를 택한 나는 10시간 남짓한 비행 동안 숙면을 취한 뒤 오전 9시 시드니 땅을 밟았다. “호주는 어엿한 겨울이에요. 파란 하늘에 속지 마세요. 특히 오늘 아침은 꽤 쌀쌀하거든요.” 공항 픽업 담당 드라이버 스티브는 할랑한 반팔 차림인 나를 보며 뭐라도 꺼내 입으라는 눈치다. 아침 기온은 10℃ 안팎. 한국으로 치면 겨울보다는 가을에 가까운, 살짝 몸을 웅크리게 되는 서늘함이 그런대로 좋았다. 피부에 닿는 찬 공기가 새삼스레 낯선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하자 비행이 남긴 고단함도 견딜 만한 것이 됐다.
시드니국제공항에서 크라운 타워 시드니 호텔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가야 한다. 창밖으로 깨끗하다는 표현만이 떠오르는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이 이렇게 상쾌할 수 있다니. 20분쯤 달리자 반팔부터 패딩까지 각양각색 차림을 한 러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달링하버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끼고 있는 크라운 타워는 낮이고 밤이고 언제든 뛰기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호텔이 가까워지자 거리엔 뛸 준비를 하고 있거나, 뛰고 있거나, 이미 한 차례 뛴 듯 숨을 고르는 사람들만 보였다. 다음 날 아침의 러닝을 다짐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일식 레스토랑 노부(Nobu)의 전경.

일식 레스토랑 노부(Nobu)의 전경.

은은한 아로마 향이 느껴지는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룸으로 향하는 길. 때를 기다렸다는 듯 지배인 이사벨은 다정한 메시지를 건네왔다. “비행은 무탈했나요? 당신이 묵는 14층 스위트룸에서는 하버브리지와 오페라하우스가 한눈에 내다보일 거예요. 천천히 뷰를 즐기되, 점심 식사 전 호텔 바로 앞 산책로를 거닐어보는 것을 추천해요. 구석구석 예쁜 골목길을 발견하는 재미도 잊지 말고요.” 시드니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모두 담을 수 있는 룸 컨디션은 예상치 못한 옵션이었다. 실제로 본 방은 더욱 근사했다. 거실 벽면을 둘러싼 통창 너머로 보이는 이른 아침의 풍경은 소문난 야경 못지않았다. 간단히 짐을 푼 뒤, 이사벨의 말을 따라 무작정 강변을 거닐어보기로 했다. 하이드공원, 보태닉가든, 세인트메리 대성당,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까지. 호텔에서 차로 7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시드니 명소가 빼곡하다. 걸어서는 30분 정도 걸리는데, 낮에는 기온이 17℃ 가까이 오르는 봄 날씨라 산책 겸 걷기에도 좋다. 지도를 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목가적인 풍경의 골목길이 이어졌다. 영국 건축가 윌킨슨 아이어(Wilkinson Eyre)의 작품이라는 크라운 타워 시드니는 경사진 골목에서 보니 꽃잎이 감싸고 있는 듯한 실루엣처럼 보였다.
크라운 타워에 시드니는 총 3백49개의 객실이 있다. 내가 묵었던 스위트룸을 비롯한 모든 객실은 탁 트인 하버 뷰를 자랑한다. 5층에는 45미터에 달하는 풀이 있다. 겨울에도 온수풀을 제공하는, 1년 내내 개방된 곳이다. 눈앞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달링 하버를 바라보며 수영하는 낭만이 여기에 있다. 24시간 개방된 체육관부터 영화 <챌린저스>의 배경이 될 법한 화려한 색감의 테니스 코트도 있다. 원한다면 1시간에 40달러 가격으로 1대 1 테니스 코칭을 신청할 수 있다. 호텔 앞 고요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다는 스파는 이곳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사우나와 온수풀, 널찍한 베드, 마사지 룸을 갖췄다.
사실 이 모든 것에 앞서 크라운 타워 시드니에 대해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건, 이곳이 테일러 스위프트가 월드투어를 할 때 머무른 호텔이라는 사실이었다. 그가 묵었다는 룸은 호텔 최고층인 89층에 위치한 프라이빗 빌라다.(숙박요금은 1박에 3만8천 호주달러에 달한다. 한화로는 약 3천5백만원.) 수석 컨시어지 레티시아의 안내를 따라 둘러본 룸은 실내 가라오케부터 당구대, 프라이빗 풀과 야외 테라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궁전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는 세계적인 호텔 디자인 부티크인 마이어 데이비스(Meyer Davis Studio)의 정교한 디자인의 결과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지는 통창은 격이 다른 뷰를 선사한다. 체크인 시간을 비롯한 모든 것은 개인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침실과 욕실. 어디에서든 2백75미터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백75미터 높이에서 스카이라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크라운 타워 시드니 호텔의 외관.

2백75미터 높이에서 스카이라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크라운 타워 시드니 호텔의 외관.

시드니에 머무는 동안 먹고 마시는 일은 대부분 호텔 안에서 해결했다. 전 세계에 매장을 두고 있는 일식 레스토랑 노부(Nobu)를 비롯해, 루프톱 바 서크(Cirq), 낮에는 애프터눈 티, 밤에는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티더블유알(TWR) 등 크라운 타워 시드니에서 즐길 수 있는 미식의 종류도, 콘셉트도 다양해서다. 레티시아는 호텔 안에서 가장 추천할 만한 곳으로 레스토랑 우드컷(Woodcut)을 꼽았다. 호주 현지에서 수급한 식재료를 활용해 독특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증기, 불, 얼음 세 가지 콘셉트의 오픈 키친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호텔 26층에 위치한 파인 다이닝 온코어(Oncore)다. 지금도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으로 이곳을 택한 건 잘한 일이라 자부한다. 2018년 미쉐린 가이드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여성 셰프 클레어 스미스(Clare Smyth)가 운영하는 곳으로도 유명한 이곳에서는 와인과 함께하는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서버의 안내를 받으며 홀로 들어서자 주방의 모든 셰프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인사를 건넸다. 블랙 트러플과 치즈로 맛을 낸 구제르(gougere)와 장어 젤리(jellied eels)로 시작한 코스는 장장 2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나는 호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생선인 머레이 코드(Murray Cod)와 전복·오징어·체다 치즈를 곁들인 돼지감자 등 신선한 해산물 베이스의 요리로 구성된 시즈널 코스를 택했다. 메뉴가 나올 때마다 셰프들의 친절한 설명이 함께였지만, 작품 같은 플레이팅에 정신을 빼앗겨 놓친 설명이 수두룩했다. 근사한 야경과 맛있는 음식, 와인이 함께 하는 호사스러운 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다가 지난 4일을 차례차례 톺아보았다. 멀리 나갈 일도 없이 마음껏 먹고, 수영하고, 산책하고, 관광하는 모든 일정이 가능한 나날이었다. 끝끝내 성공하지 못한 아침 러닝에 대한 아쉬움은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달랬다.

Credit

  • 사진/ Crown Towers Sydney
  • 디자인/ 이예슬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