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벨트의 무한 변신

벨트는 더 이상 팬츠를 잡아주는 용도가 아니다

프로필 by 윤혜영 2025.03.08

BUCKLE UP


벨트는 더 이상 팬츠를 잡아주는 용도가 아니다. 때로는 팬츠를 위한 것이 아닐 때도 있다.



Loewe Prada Hodakova Prada Miu Miu Vaquera

스웨덴 브랜드 호다코바는 벨트를 편애하지만 팔지는 않는다. 케이트 블란쳇이나 그레타 리와 같은 셀러브리티가 선호하는 이 브랜드의 벨트를 사고 싶다면, 아마 많은 옷을 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팬츠와 함께 착용할 수도 없다. 대신 그것들은 백이나 드레스 혹은 셔츠에 붙어 나온다. 호다코바는 소위 ‘개조된(converted) 상품’이라 불리는 것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이는 목적을 달리한 소재, 즉 벨트로 만들었지만 벨트가 아닌 럭셔리 제품이다. 6개의 서로 다른 벨트로 만들어진 호다코바의 바게트 백(옆으로 튀어나온 벌키한 실버 버클이 서로 철커덕 소리를 내는)을 처음 본 순간, 그것은 내 소장 욕구를 자극시켰다. 나는 평소 벨트를 즐겨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벨트로 만든 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건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피스였다. 거친 상상에서 만들어진 느낌이 강했고, 마케팅이나 판매를 염두에 둔 제품이 아니었다.


그 뒤에는 지난 9월 LVMH 상을 거머쥔 브랜드의 창시자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Ellen Hodakova Larsson)이 있다. 그녀는 옷을 디자인하기 전 조각가로 일했다. “패션은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어요. 제가 관심 있는 건 오히려 실제적 피스를 대하는 사고방식이에요. 단지 옷이 아닌, 무언가를 가치 있게 바라볼 것인가와 관련이 있죠.”


그동안 벨트는 패션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펑키한 로 라이즈 팬츠는 세대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 스퀘어 토 부츠가 흥미로운 아이템인지, 혹은 못생긴 신발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매년 새로 출시되는 백은 잇 아이템의 지위를 치열하게 다툰다. 하지만 벨트는…. 그저 벨트 아닌가? 일례로 아무도 틱톡(TikTok)에서 벨트를 언급하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도 벨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불쌍한 벨트.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다.


어쩌면 벨트가 실용의 영역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주로 바지가 끌리거나 밟히지 않도록 옷을 잡아주기 위해 사용되기 때문이다. 벨트는 분명 우리의 하루를 돕지만 대단한 환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벨트가 팬츠를 돕는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이 오면 어딘가에 붙어 있거나, 화려하게 꾸며지거나, 여러 겹 쌓여 있거나, 사이즈가 커지거나 하는 등 얼마든지 패셔너블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뉴욕 뮤지엄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s)은 “패션은 실용성이 다가 아니다. 자기 표현이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또 “백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오랜 시간 주목을 받지 못한 벨트가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끈 액세서리가 됐다고 강조한다.


물론 액세서리로 기능한 패션 벨트는 우리 주위에서 늘 함께했다. 아랄다 빈티지(Aralda Vintage, LA 예약제 빈티지 스토어)를 운영하는 브린 존스(Brynn Jones)는 벨트가 눈길을 끌었던 지난 시대를 언급한다. “준야 와타나베의 2003년 봄 컬렉션은 패러슈트 피스와 더불어 많은 벨트와 버클 아이템이 돋보였죠. 저 또한 운 좋게 당시의 몇몇 피스를 선점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얼마 전에는 마르지엘라의 2009년 가을 시즌 워치 벨트를 팔았어요. 엉덩이 주위를 감는 가늘고 긴, 다이얼이 없는 시계 벨트였죠. 2009년 봄 시즌 알렉산더 맥퀸의 갈색 벨트도 가지고 있는데, 정말 큰 아워글라스 모양이 특징이에요. 그걸 코르셋처럼 착용하는 거예요.”



왼쪽부터: 알렉산더 맥퀸 1999년 봄 컬렉션, 벨라 하디드, 2015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와 H&M 컬래버레이션 재킷을 입은 영 서그(Young Thug), 케이트 헌들리 톱을 입은 클로에 킹, 준야 와타나베 2003년 봄 컬렉션



구찌의 로고 벨트는 흔한 것이 됐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바토 데 사르노는 보다 작은 버클로 새롭게 만들었다. 알라이아의 부채꼴 모양의 코르셋 벨트는 언제나 추종자가 있었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터 뮬리에는 최근 실루엣에 페플럼을 더한 프린지 버전으로 새로운 레퍼토리를 더했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주얼과 참 장식 링크가 달린 루스한 벨트는 중세 유럽과 중앙 아시아에서 패셔너블한 것으로 여겨졌고, 라파엘 전파 이전과 오리엔탈리스트의 회화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발레리 스틸이 덧붙인다.


골드 참, 진주, 그리고 가죽 리본이 달린 샤넬의 주얼리와 같은 체인 벨트도 마찬가지. 그런가 하면 알렉산더 맥퀸은 체제 전복적으로 벨트를 사용했다. 1998년 스프레이 총을 든 로봇이 샬롬 할로가 입은 벨트 드레스에 페인팅을 뿌리기도 했으니까.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2006년 가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벨트로 된 가죽 재킷과 팬츠 컬렉션을 선보인 적도 있다.(H&M과의 디자이너 컬래버레이션에서 다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벨트는 진화하고 있다. 표현법은 덜 직설적이다. 현재 벨트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로 말하자면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다른 의상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허리에서뿐만 아니라 몸통 위로 조이거나, 혹은 엉덩이 아래로 떨어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걸쳐 착용되기도 한다. 뱅글처럼 쌓아 올리기도 하는데, 벨트가 많을수록 옷 입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호다코바의 컬렉션을 참고해보라.


프라다의 2025 봄 컬렉션에서 모델들은 볼드하고 선명한 컬러의 하이웨이스트 레깅스를 입고 나왔는데, 하나같이 허리 라인 한참 밑에 있는 벨트 고리에 연결된 벨트를 차고 있었다. 엉덩이쯤에 걸쳐진 것처럼 보이는 트롱프뢰유(trompe I’oeil) 벨트 장식 스커트와 팬츠를 입은 모델들도 있었다. 또 로 라이즈의 플리츠 울 스커트에는 메탈 링크로 연결된 하이웨이스트 가죽 벨트가 매치되었다. 이를 본 매체들은 즉각적으로 캐리 브래드쇼(<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가 자신의 복근을 벨트로 강조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미우미우는 또 어떤가. 프라다 여사는 벨트를 레이어링 도구로 표현했다. 허리 주위를 감싸는 패브릭과 메탈, 참을 단 것. 이는 지난 두 시즌 동안 그녀의 런웨이를 통해 유명세를 탄 백(벨트 디테일과 개성 있는 참 장식이 달려 있다) 시리즈를 연상시켰다.


파리에서는 바퀘라가 엉덩이에서부터 시작해 몸통 중간까지 올라오는 코르셋 같은 벨트를 선보였다. 또 큰 쇠고리가 함께 달린 거대한 버전도 있었다. 밀라노와 런던 런웨이에서, 페라가모와 JW 앤더슨은 낮게 걸친 벨트를 한 재킷을 런웨이에 선보였다. 전형적인 벨트 재킷이 몸의 가장 얇은 지점에서 실루엣을 잡는 데에 반해 이 벨트들은 장식적이면서도 예기치 않은 완벽함처럼 여겨졌다. 특별한 매력이 없을 만한 곳에서 약간의 특별함을 더한 것처럼. 프라다 버클 백도 빼놓을 수 없다. 벨트를 착용한 것처럼 보이는 심플하면서도 박시한 가죽 핸드백 말이다. 2024년 봄 처음 런웨이에 등장한 후 계속해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며 두아 리파, 다이앤 크루거와 같은 셀럽들의 룩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왼쪽부터 : 루이 비통을 입은 시어셔 로넌, 루아르를 입은 리치 샤잠, 로에베의 벨트를 한 메타의 에바 첸, 클로에를 입은 칼리 클로스,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2023 가을 컬렉션, 호다코바를 입은 메이지 윌리엄스.



런던 베이스의 브랜드 키코 코스타디노브의 여성복 라인 디자이너인 로라와 디나 패닝은 2023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위해 종아리 길이의 키튼 힐 부츠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도 다양한 벨트 장식이 달려 있다. “부츠에 벨트를 이리저리 배치하면서 추상적으로 이용했어요. 이 상황에서는 조금 엉뚱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좀 더 개인적인 개성이 가미되죠.”


벨트는 런웨이 바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입은 루도빅 드 생 세르넹의 드레스는 마치 빨간 벨트가 뱀처럼 몸을 둘둘 감은 듯 보였다. 벨라 하디드는 뉴욕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 청바지에 벨트 두 개를 종종 착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밀라노 패션위크에 나타난, 니먼 마커스의 패션 마켓 & 편집 디렉터를 맡고 있는 클로에 킹(Chloe King)은 어떤가. 그녀가 입은 케이트 헌들리(Kate Hundley)의 톱은 구조적인 가죽 보디스에 부착된 빈티지 벨트로 만들어진 것으로, 시크한 구속복(straitjacket)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이 톱에 대해 클래식한 색과 실루엣으로 본디지 아이디어를 비튼 것 같아 마음에 든다고 했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아이템이었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제가 벨트를 몸통 위까지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죠. 물론 그렇지 않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제겐 (이 아이템이) 쓰이길 기다리는 옷장처럼 느껴졌어요. 이 옷은 근사하게 재단됐어요. 이런 약간의 왜곡이 강하고 터프하고 발칙한 느낌을 줄 수 있죠.”


최근 보여지는 벨트에서는 뭐랄까, 약간의 펑키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불만과 불확실성, 회의로 가득 찬 지금 이 시대에 더없이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2025년을 걸쳐 확장될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듯, 더 큰 미학의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일 수도 있다. 혹은 이건 그저 흘려 보내고 풀어주는 것에 관한 사인인지도 모른다. 지난 많은 시즌 동안 패션계의 화두는 실질적인 옷장의 에센셜 아이템, 미니멀리즘, 그리고 되고 싶은 내가 아닌, 우리의 실제적 삶을 위한 옷 입기에 있었으니까. 만약 새로운 벨트 신(scene)이 반항이 아닌 탈출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현재 우리 삶의 대부분은 카오스적이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돈된 방법으로 옷을 입는다고 해서 삶을 정돈할 수는 없다. 직업에 맞는 옷 입기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옷 입기가 아닐까.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지금, 차라리 아예 조금 엉뚱하게 벨트를 벨트 같지 않게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편이 오히려 현재를 반영하는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Credit

  • 글/ Tara Gonzalez
  • 번역/ 이민경
  • 사진/ ⓒ Max Cisotti/Dave Benett, Getty Images For Apple TV,Gotham/Getty Images, Claudio Lavenia/Getty Images
  • 사진/Valentina Frugiuele/Getty Images, Lauchmetrics/Spotlight, Pascal Le Segretain/Getty Images.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