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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역대급 1위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까지 빌보드 장악한 흥행 비결은?

이례적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 수록곡이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를 장악하고, 오스카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지금의 광경은 단순한 흥행 성과를 넘어선다.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8.27

10초 안에 보는 요약 기사

✓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케이팝과 신화를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선보였다.

✓ 이 작품은 전통 샤머니즘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며 전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거두었다.

✓ 애니메이션과 K-팝의 결합이 전통과 현대의 미학을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

네온빛 무대가 번쩍이면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마이크를 내려놓은 순간, 걸그룹 ‘헌트릭스’는 무시무시한 악귀(데몬)와 맞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2025, 이하 <케데헌>)>의 줄거리다. 작품은 아이돌이자 악마 사냥꾼이라는 이중적 삶을 사는 세 명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악마계의 왕 귀마를 봉인하기 위해 싸우는 걸그룹 헌트릭스와 저승사자로부터 영감을 얻은 5인조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와의 격돌은 화려한 액션신으로 그려진다. 음악 영화이자 액션 판타지, 동시에 한국적 설화가 결합된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작품은 기존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완전히 비껴간다. 음악 영화이자 액션 판타지, 동시에 한국적 설화가 결합된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기존 애니메이션의 문법을 완전히 비껴간다.

사진/ 넷플릭스 제공

사진/ 넷플릭스 제공


흥행 성과는 눈부시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제작, 넷플릭스 배급이라는 외국 자본 구조에도 불구하고 <케데헌>은 정체성 면에서 놀라울 만큼 한국적이다. 공개 두 달 만에 누적 조회수 2억 회를 넘기며 41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 OST 앨범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네 곡을 동시에 올렸다. 주제곡 <Golden>과 <Soda Pop>은 대부분 한국어 가사임에도 정상에 올랐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싱얼롱 이벤트 상영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넷플릭스는 8월 27일 기준 누적 시청 수 2억 3600만 건으로 영화 부문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가상의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에는 실제 팬덤이 형성됐고, 틱톡에서는 안무 챌린지가 확산됐다. 가상과 현실, 전통과 대중문화가 뒤섞일 때 탄생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보여준 사례다.


신화와 아이돌의 묘한 조우

<케데헌>의 가장 큰 매력은 K-pop을 단순히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신화를 촘촘히 직조해낸 점이다. 이야기는 노래로 악귀를 봉인하던 옛 전설에서 출발한다. 그 계승자가 K-pop 3인조 걸그룹이라는 설정은 놀라움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면서도 강렬한 은유를 남긴다. 음악과 춤으로 귀신을 몰아낸다는 이야기는 케이팝 아이돌이 가진 강력한 무기인 ‘무대 위 에너지’를 신화적 힘으로 다시 위치시키는 장치로 작동한다.

시각적 장치도 한국적이다. 헌트릭스 멤버들의 의상 곳곳에는 한복 장식 노리개가 달려 있고, 악귀를 봉인하는 수호 장면에는 갓을 쓴 저승사자가 등장한다.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의 마스코트인 파란 호랑이 데피(Derpy)와 세 발 달린 까치 슈시(Sussie)는 조선시대 민화 ‘호작도’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마을을 지키던 당산나무와 오색 끈은 헌트릭스가 악마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임무와 절묘하게 연결된다. 이런 디테일은 한국 관객에게는 익숙한 문화적 맥락을 불러오고, 해외 관객에게는 새롭고 낯선 신비감을 제공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컬리티’와 ‘글로벌리티’가 맞닿는다.

사진/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 마스코트 데피(Derpt)_넷플릭스 제공 사진/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 마스코트 데피(Derpt)_넷플릭스 제공 사진/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_넷플릭스 제공

한국적인 것을 넘는 가능태

사진/ 사운드트랙_리퍼블릭 레코드

사진/ 사운드트랙_리퍼블릭 레코드

또다른 신선한 점은 무당의 굿과 아이돌의 콘서트에서 집단적 에너지를 발견하고, 이를 병치한다는 점이다. 북소리와 응원봉, 제의와 공연은 사실상 동일한 기능을 한다. 관객과 무대가 에너지를 교환하며 깊은 공동체적 체험을 만든다. 굿판의 몰입과 콘서트의 열광은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이를 끊임없이 병치시키며, K팝 팬덤이 지닌 종교적·의례적 측면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한국적 집단성이 세계적 팬덤 문화와 닮아 있다는 통찰이 담겨있다고 분석해 볼 수 있다. 물론, 음악적 완성도 역시 몰입에 큰 몫을 했다. 영화 수록곡 ‘Golden’을 비롯해 ‘How It’s Done’ 등 여러 곡이 글로벌 스트리밍 차트를 장악하며 팬덤을 형성했다. 실제로 넷플릭스 공개 후 사운드트랙 누적 스트리밍은 30억 회를 돌파했고, “Golden”은 빌보드 핫100 1위까지 올랐다. 테디가 설립한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들이 노래 및 안무 제작에 참여했고, 곡의 전개 방식이나 구조, 가창법 등이 'K팝스럽다'는 평을 들으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사진/ 넷플릭스 샵 웹사이트 캡처 사진/ 넷플릭스 샵 웹사이트 캡처 사진/ 넷플릭스 제공

<케데헌>은 단순히 악귀를 물리치는 영웅담에 머물지 않는다. 헌트릭스의 리더 루미는 데몬 아버지와 헌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캐릭터다. 출신을 숨기고 살아온 그는 결국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진정한 힘을 얻는다. 이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디아스포라·혼혈·다문화 세대를 은유한다.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매기 강(강민지)은 자신의 성장 경험을 투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루미가 몸에 숨긴 악령의 문양을 드러내고, 멤버들의 연대와 사랑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장면은 곧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보편적 메시지를 담는다.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의 현재와도 겹쳐지는 대목이다. 실제로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루미가 가진 ‘두려움’의 보편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전 세계 어딜 가든 모든 사람은 결국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사랑받고 싶고, 안정을 원하고, 남들에게 받아들여지길 원합니다. 우리는 다 각자 자기 안에 숨기고 싶은 것들이 있고, 수치심을 느끼는 지점들이 있잖아요.”


K-콘텐츠에 남긴 묵직한 질문들

사진/ 넷플릭스 제공

사진/ 넷플릭스 제공

흥행은 고무적이지만 영화가 남긴 질문은 무겁다. 케이팝과 샤머니즘, 여성 영웅 서사가 이렇게까지 자연스럽게 결합된 콘텐츠가 한국 내부에서 아니라 외부 자본과 제작진에 의해 구현됐다는 사실은 분명 아쉽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오랫동안 세계 제작사의 하청 기지였지만, 자국의 신화와 대중문화를 결합한 대형 프로젝트는 드물었다. 제작비 구조, 짧은 회수 주기, 장기적 투자 시스템의 부재가 원인이다. K-드라마가 장르 서사를 재편했듯, 애니메이션 역시 창작 환경이 뒷받침된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그동안 디즈니·픽사가 펼쳐온 서사와는 결이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포인트다. 아이돌 판타지 위에 한국적 상징과 여성 서사, 팬덤의 집단성을 얹어낸 실험은 케이팝이 더 이상 음악 산업에 갇힌 현상이 아님을 입증한다. 케이팝이라는 문화가 충분히 글로벌 장르를 흔들 수 있음을, 음악 산업을 넘어 신화적 세계관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케이팝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황금 열쇠가 될 것이라며, 고민 없이 단순히 복제하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물론 이번 작품은 가능성을 입증했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구조적 제약과 투자 부재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케데헌>은 한류의 집단적 에너지와 한국적 상상력이 어떻게 세계적 언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아이돌 판타지와 샤머니즘, 글로벌 팬덤과 로컬 상징이 어우러진 작품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을 넘어 문화적 현상으로 우뚝 자리매김했다. 동시에 “왜 한국 내부에서 나오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국내 콘텐츠 산업이 풀어야 할 숙제를 던진다. 한국적이되 글로벌한, 대중적이되 신화적인 이 기묘한 성공은 결국 콘텐츠 산업의 방향을 비추는 거울이다. 케이팝의 세계관은 무대를 넘어 스크린과 신화의 언어로 확장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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