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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며 읽어야 하는 책, ‘무성음악’

일곱 명의 작가가 ‘소리 없는 음악’을 주제로 쓴 글은 음악과 함께 읽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6.01.28

들으며 읽기


오선호, 김수영, 원초이, 박이강, 도수영, 이릉, 안덕희. 일곱 명의 작가가 ‘소리 없는 음악’을 주제로 쓴 단편 모음집 <무성음악>은 음악을 들으며 읽어야만 하는 책이다.


책을 읽을 땐 대체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 듣는대도 어쩌다 한 번, 가사 없는 자연의 소리나 앰비언트 음악 정도. 들리는 노랫말이 읽는 글과 겹칠 때 번번이 방해를 받곤 해서다. <무성음악>은 음악을 들으며 읽으라 권하는 책이다. 각 소설이 시작되는 페이지에는 이야기에 영향을 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연결되는 QR코드를 배치했다. 처음에는 음악 없이 읽었다. 소설이지만 알고 보면 내밀한 자기 이야기를 기반으로 썼을 것만 같은, 공허와 슬픔이 잔잔하게 깔린 에세이 같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전혀 다른 장면이 보이고 들렸다. 일기 같던 글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설처럼 읽혔다.

“금속이 왜 귀를 망치는지 들어 보세요. 상현이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 뮤직을 열고 음악을 재생시킨다. 금속성의 무언가가 부딪히고 깨지는 듯한 소리에 날카로운 비명이 섞여 든다.” 작가 오선호의 단편 <진통제>에서 이 대목을 읽을 땐 메탈 밴드 마스터돈(Mastodon)의 ‘Pain With an Anchor’가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그 순간 아무런 준비운동도 없이 화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지금 나는 상현이 튼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이다. 직감이 온 순간 절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로 시작되는 박이강의 단편 <하필이면 다행히도>를 읽을 땐 싱어송라이터 이랑의 ‘가족을 찾아서’ 도입부에서 약 10초간 이어지는 셰이커 사운드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글만 있던 처음의 독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순간이다.

사실 소설의 소재로서 음악의 역할은 크지 않다. 친구의 부고를 받고 과거의 아름다웠던 시절 함께 들은 왈츠를 떠올리는 인물(김수영, <탱글우드>), 성공과 몰락이 함께인 삶을 산 재즈 음악가 조풍각의 일생을 따라간 이야기(이릉, <악인(樂人) 열전 1: 째즈마스터 조풍각>)처럼 곁다리 소재로 쓰일 뿐, 음악 자체보다는 흐린 겨울 날씨에 어울리는 고독과 불안, 애틋했던 기억, 망가진 관계를 다룬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에는 글로 다 담기에는 어려운 미묘한 구석이 있다. 음악은 언어로 묶어둘 수 없는 그 감정을 쿡쿡 찌른다.

다시금 책의 제목으로 눈길이 간다. 소리가 없는 음악. 말하자면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 두 번째로 책장을 덮었을 땐 이 모순적인 표현이야말로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이지만 소리가 없는 무성음악처럼, 글로 쓰인 소설이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다룬다. 이왕이면 혼자 있는 방에서, 책의 기획 의도를 따라 QR코드를 스캔했을 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읽어보길 권한다. 내 안 어딘가에도 있는, 글로는 표현 못할 기분을 정확히 묘사하는 문장을 만나게 될 것이다.

Credit

  • 사진/ 마요네즈 출판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