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막걸리 셀처부터 청국장 베이스 크림치즈까지, K 발효의 맛과 멋

김치, 젓갈, 장이 전부가 아니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6.01.27

발효의 맛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는 맛이 있다. 숨 쉬는 옹기 안에서 온도와 습도, 풍량의 변화를 그대로 흡수해 숙성시킨 한국식 발효 음식이 그렇다. 그 원리는 고수하되 창의적인 변주를 꾀한 K 발효의 맛.


맥주와 하이볼 사이, 막걸리 셀처

캔을 살짝 흔들면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쌀 침전물이 고루 섞여 크리미한 질감의 탄산이 살아난다. 탄산이 이렇게나 부드러울 수 있던가. 효모, 젖산, 곰팡이균이 만들어내는 막걸리 특유의 시큼한 산미는 콤부차 수준으로 약해졌다. 오리지널과 유자&파인애플, 얼그레이, 믹스베리. 어떤 맛을 골라도 단맛은 과하지 않다. 우리나라 전통 막걸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파클링 주류 브랜드 ‘SWRL’이 한국보다 미국에 먼저 출시한 막걸리는 이토록 새롭다. 맥주보다 낮은 3.7% 도수, 설탕 무첨가, 한 캔당 89칼로리, 글루텐프리, 비건. 정확히 말하자면 ‘막걸리 셀처’다. 지금 미국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는 하드 셀처(Hard seltzer, 탄산수 베이스에 발효된 당으로 만든 알코올 향을 입힌 저당·저도수 술)를 살짝 비튼 것이다. 한국산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킨다는 시작점은 막걸리와 같지만, 그 과정에서 도수와 당, 바디감, 칼로리를 셀처 수준으로 조절해 접근성을 높였다.


고추장과 쌈장이 소스가 될 때

‘케이첩’을 만든 유지영 대표는 신사동 한식당 ‘달식탁’과 식문화 전문 기업 ‘장루하’를 비롯해 지난 25년간 수많은 외식 브랜드의 개발 및 컨설팅에 참여한 F&B 분야의 잔뼈 굵은 전문가다. 전라북도 순창의 고추장 제조 장인인 어머니의 기술을 이어받아 직접 담근 장으로 케이첩을 만들고 있다. 케이첩은 고추장 소스다. 검붉고 되직한 질감의 고추장과는 좀 다르다. 튜브에 든 케이첩을 짜내면 초장 같기도, 종지에 담고 보면 케첩 같기도 하다. 고추장 소스라는 정체성과 제품명, 고추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텍스처를 보고서는 철저히 외국 소비자를 겨냥했다 생각했지만 맛을 보면 우리가 알던 그 고추장이다. 차이라면 묽고 부드러워 입안에서 느껴지는 텁텁함이 줄었다는 것. 쌈장 소스 ‘쌈싸라’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댁 장독대에서 갓 꺼낸 발효 된장 베이스 쌈장의 감칠맛은 적지만 훨씬 가볍고 짠맛이 덜해 쌈이나 채소, 두부 위주 식단에도 잘 어울린다.


항아리에서 발효시킨 사과식초

한국 전통 발효 방식으로 식초를 만드는 ‘시내들’의 시작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어 상품 가치를 잃은 수확 직전의 사과를 대량 사들여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켰다. 설탕 대신 사탕수수 원당을 발효의 시작 재료로 썼지만, 발효 과정에서 모두 소모되어 식초로 완성되었을 땐 단맛이 남지 않는다. 첨가물 없는, 초모가 살아 있는 생식초의 맛. 최소 1년 이상 자연 발효를 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다. 시내들은 무엇이든 빨리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지금도 경남 거창에서 자란 과일과 곡물을 사용해 꼬박 365일 이상 항아리에서 자연 숙성을 시키는 느린 발효를 고수한다. 단일한 산미 대신 다양한 맛의 층위가 느껴져 원액 그대로를 먹어도 거부감이 적다. 홍초처럼 물에 희석해 마셔도 무방할 정도로 신맛이 강하지 않다.


샴페인을 닮은 콤부차

뚜껑을 열자마자 톡 쏘는 향이 느껴진다. 우아한 보틀 디자인과는 다소 상반된 첫인상이다. 맛에는 또 한 번 반전이 있다. 아포차(차나무 가지에 갓 돋아난 새싹과 떡잎으로만 제다한 차)와 베르가모트 향을 블렌딩해 산미는 코로 맡을 때보다 약하게 느껴지고, 은은한 단맛이 입맛을 돋운다. 진가는 끝맛에 있다. 여린 잎으로 우린 녹차를 마신 듯 향긋하고 떫은맛 없이 입안에서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기포가 강하지 않아 목넘김도 편안하다. 멸균처리하지 않은 생 콤부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슬로운’의 콤부차는 총 두 번의 발효를 거치는데, 2차 발효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탄산이 생성되며 당은 줄어들고 청량한 맛이 완성된다. 최근 출시된 블랙 라벨 콤부차는 평소 콤부차의 시큼한 맛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전체적으로 맛의 농도와 산도를 낮추고 산뜻한 차 향을 배가시켰다. 작은 찻잔에 따라 한두 입 마시다 보면 짭짤한 음식이 당긴다. 이 콤부차에 ‘Opening’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청국장으로 만든 크림치즈

그 대상이 무엇이든, 청국장을 기반으로 한 음식이라면 경계부터 하게 되는 건 쿰쿰한 향 때문이다. 국산콩 청국장과 견과를 함께 발효해 만든 ‘바이오청국장’의 크림치즈는 청국장 베이스의 음식은 냄새가 난다는 편견을 확실히 깨준다. 청국장은 입안에 넣고 몇 번 씹을 때에야 비로소 콩의 고소함을 느끼게 된다면, 바이오청국장의 크림치즈는 입에 넣기 전 코를 박고 향을 맡아도 청국장의 낌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오리지널 외에 트러플, 허니&갈릭, 비건치폴레, 말차블룸까지 총 5가지 맛으로 구성된다. 거부감이 느껴졌던 말차블룸은 의외로 단맛이 가장 덜하고 고소해 손이 자주 간다. 아침 식단에서 식사 빵에 바를 크림치즈나 잼, 버터 대용으로 건강히 활용할 수 있을 듯. 유당이 들어 있지 않고, 발효에서 유래한 유익균 성분이 포함되어 장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Credit

  • 사진/ 김래영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