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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빛나는 단막극의 시대! 낭육권 전쟁부터 꼭 봐야 할 단막극 5

매해 손꼽아 기다리게 하는 tvN 단막극 시리즈 ‘O’PENing 2025’에서 선보인 드라마 <냥육권 전쟁>을 톺아 보았다.

프로필 by 최강선우 2025.08.25
사진/tvN 제공

사진/tvN 제공

<냥육권 전쟁>은 제목 그대로 귀여운,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혼 직전의 부부가 반려 고양이 ‘노리’를 두고 벌이는 다툼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사랑을 기반한 관계의 복잡함과 결혼 및 가족 제도의 허점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작품의 재미는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자녀 양육권 분쟁에서나 들릴 법한 단어들이 고양이를 누가 데려갈 것인가를 두고 하는 다툼에서 오가는 순간 블랙코미디가 된다. 사료, 스크래처, 캣타워 같은 일상의 소품들이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아이 양육의 은유가 되어 다가온다. 그러나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곧 서사는 아이를 여러 번 유산한 경험, 아픈 기억과 깊은 상처를 건드린다. 결국 노리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부부가 이루지 못한 ‘가족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반려동물과 출산의 이야기가 미묘하게 겹치면서, “무엇을 가족이라 부를 것인가”라는 질문은 날카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상상력을 제고하게 만든다. 과거 O’PENing 시리즈가 주거·노동 등 사회문제를 전면에 배치해왔다면, 이번 작품은 반려동물을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올린 첫 사례다. 작품 속 부부는 “노리가 자식과 다름없다”고 말하지만, 실제 한국 법정은 여전히 반려동물을 ‘재산’으로 분류한다. 극에서 펼쳐지는 불일치는 긴장을 강화하며, 단순한 생활극을 넘어 오늘의 초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배우 김슬기가 한 인터뷰에서 “반려동물은 대체 불가능한 가족이라는 메시지”를 작품의 핵심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엇보다도 윤두준과 김슬기, 두 주연 배우의 호흡은 이런 다층적 정서를 입체적이고 매력적으로 드러낸다. 방영 전부터 화제를 모은 것도 두 사람이 10년 만에 다시 만나 부부 연기를 한다는 소식은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이미 2015년 MBC에서 방영한 타임슬립 로맨스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또다시 만난 둘은 티키타카가 잘 되는 말맛 좋은 대사로 코미디를, 체념이 묻은 눈빛으로 멜로를, 불완전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보여준다. (스포일러 주의! 오해를 거듭하며 엇갈리던 둘은 뒤늦게 서로의 희생과 진심을 알게 된 둘은 이혼이 아닌 미래를 약속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장르적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건 단막극이기에 가능한 농축적 순간들이기도 하지만, 섬세한 감정 표현과 케미(chemistry)가 서사의 무게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볼 수 있다.



실험과 도전의 무대

사진/tvN 제공

사진/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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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단막극의 본질은 압축에 있다. 짧으면 단 한 편, 한 시간 내외로 완결성을 갖춘 기승전결을 담아야 하기에, 사건과 감정은 군더더기 없이 농축된다. 덕분에 표정 변화나 작은 대사 하나까지도 장편과 비교하면 훨씬 선명한 의미를 갖는다. <냥육권 전쟁>이 똑똑한 고양이 노리의 눈망울과 몸짓에 자칫하면 무거울 수 있는 유산과 이혼 서사의 무게를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한 회 동안 가벼움과 무거움, 웃음과 상실을 끊임 없이 교차시킨다. 짧은 러닝타임이라는 한계는 의외로 창작적 자유와 혁신으로도 이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코미디, 멜로, 사회 풍자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연함은 장편 드라마로는 불가능한 실험실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단막극은 신진 창작자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다는 데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작가와 감독이 감각을 증명하는 무대이자, 때로는 기성 창작자에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할 테스트베드가 된다. 실제로 <갯마을 차차차> 의 신하은 작가나 <블랙독>을 집필한 박주연 작처럼 실제 단막극을 통해 데뷔한 작가들은 이후 장편 프로젝트에서 주목받는 경우가 꽤 많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형식

한때 단막극은 안방극장의 작은 보석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시청률과 광고 수익의 벽 앞에 차례로 막을 내렸다. SBS <오픈드라마 남과 여>, MBC <베스트극장>, KBS <드라마시티>까지 모두 같은 운명을 맞았다. 짧은 호흡의 작품은 수익성보다 리스크로 인식되었고, 장편 시리즈 중심의 제작 시스템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2020년대 초반부터 OTT와 케이 블 플랫폼이 등장하며 단막극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tvN의 O’PENing은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이 주최하는 공모전을 통해 신인 작가·연출에게 단막극 제작 기회를 제공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콘텐츠 R&D”라 부를 정도로 제작비와 리스크는 줄이면서, 형식 실험과 창의적 아이디어는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으로 역할을 해왔다. 단막극의 귀환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콘텐츠 생태계의 다양성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돌파구이기도 하다. 짧은 호흡이 만들어내는 과감한 시도와 순간의 진실은, 단막극만이 줄 수 있는 미학적 경험이다. 창작자에게는 실험의 무대를, 시청자에게는 완결된 세계의 쾌감을 선사한다. 짧은 시간과 작은 이야기도 충분히 큰 울림을 담아낼 수 있음을 거침없이 증명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에디터 추천! 꼭 봐야 할 단막극 5



<연우의 여름>(2013, KBS2)


사진/KBS 드라마 유튜브 캡처

배우 한예리가 연기한 청소부 연우가 옛 친구와 재회하며 성장하는 청춘 드라마다. 인디밴드 보컬이자 생계 노동을 병행하는 주인공의 하루가 여름의 공기처럼 투명하게 펼쳐진다. 청춘=성공 서사라는 강박을 벗은 작품이기도 하다. 담백하면서도 여름밤처럼 투명한 감성이 시청자에게 오래 남았고, 당시 한예리는 이 작품으로 단막극상을 수상했다. 여기서 풀 버전을 볼 수 있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YN1dudJA2o)



<퐁당퐁당 LOVE>(2015, MBC)


사진/MBC 제공

사진/MBC 제공

수능 날에 비를 맞은 고3 소녀가 192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세종대왕과 사랑에 빠지는 판타지 로맨스다. 완결 있는 타임슬랩 서사에 ‘웹드라마의 잔재미’를 붙인 하이브리드 형태가 무척 실험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단 2부작이지만 폭발적 조회수를 기록하며 단막극의 대중적 확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2018, KBS2)


사진/KBS 제공

사진/KBS 제공

수능 출제위원 합숙소라는 폐쇄적 공간에 내 ‘과거의 흑역사’를 아는 남자 둘이 등장한다. 전소민의 요절복통 코미디 연기와, 박성훈의 직진 매력이 사랑의 핑퐁을 만든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민망한 과거를 유쾌하게 포착하고, 웃음 뒤 숨어 있는 불안과 상처를 다정하게 들여다본다. (풀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링크)



<사의 찬미>(2018, SBS)


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사진/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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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그의 애인이자 천재 극작가인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과 함께 알려지지 않은 김우진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한 드라마다. 신혜선과 이종석의 호연은 시대의 비극을 예술적 갈망으로 승화시키며, 짧지만 강렬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딱밤 한 대가 이별에 미치는 영향>(2021, KBS)


사진/KBS 제공

사진/KBS 제공

‘딱밤 한 대’라는 사소한 행위가 관계를 균열내는 트리거. 신예은, 강태오, 홍경, 하윤경이라는 보석 같은 배우들을 발견하게 만든 작품. 민재(강태오)는 장난으로 딱밤을 때렸을 뿐인데, 진(신예은)은 민재에게 3년 연애의 종지부를 알린다. 결국 작품은 연애가 무엇을 위함인지를 질문한다. 미세한 관계의 균열을 포착해 짧은 형식이 얼마나 다양한 색채를 담아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아름다운 우리 여름>(2024, tvN O’PENing)


사진/tvN 제공

사진/tvN 제공

사진/tvN 제공

사진/tvN 제공

‘아름·다운·우리’라는 이름을 가진 세쌍둥이가 쌍둥이 ‘나라’를 영영 잃고 첫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한다.·장규리·유영재·손상연·김민기와 김소혜(특별출연)가 2부작의 숨가쁜 템포 속 상처와 자기혐오를 드러내고 건드리기도 하며 보듬으며 성장한다. 여름의 반짝임이 슬픔을 배가하면서도 어떤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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