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그레이스 위버가 그리는 자유
그레이스 위버는 거침없는 붓질로 동시대 여성상과 그들의 솔직한 일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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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위버(Grace Weaver)는 강렬한 색채와 다채로운 조형으로 동시대 여성의 분방한 일상을 그린다. 베를린 근교 작업실에서 여성의 몸을 피사체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 작가를 만났다.
Grace Weaver, <Nightgown>, 2024, Acrylic on canvas, 228x172cm. Courtesy Galerie Max Hetzler
Grace Weaver, <Allegro ma non troppo>(After Dvořák’s American Quartet) (4), 2024, Acrylic on canvas, 228x172cm. Courtesy Galerie Max Hetzler
신작 <Blue Nudes with Grid>(2024)를 작업하고 있는 위버. 사진: Eric Degenhardt, Courtesy of the artist Grace Weaver
그레이스 위버의 아틀리에 문을 여는 순간, 공기 중에 퍼지는 물감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그 안에는 당혹스러울 만큼 압도적인 장관이 펼쳐져 있다. 거대한 공간 양쪽 벽에 세워진 여성 누드화 열두 점. 각각 가로 2m, 세로 3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다. 그림 속 여성들은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졌지만 결코 사랑스럽게 묘사되지 않았고, 몇몇은 고개를 숙이고 있으나 수줍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호하고 자부심에 차 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평가를 구하지 않는다. “서 있는 여성 누드는 일종의 영원성을 지니고 있어요. 여성이 여성을 표현한 미술의 역사는 놀라울 정도로 짧아요. 오랫동안 그 주체는 남성이었죠. 여성이 그린 여성은 어떤 모습일지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요?” 위버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다시 한 번 작품들을 바라본다. “저는 이번 작업들이 정말 만족스러워요.”
여성성은 그레이스 위버 작품의 핵심 주제다. 그는 집이나 호텔방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다. 휴대폰 스크롤을 내릴 때, 운동할 때, 쓰레기를 버릴 때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소박하면서도 자족적인 모습들을 그린 단순한 형상에서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는다. ‘좋아요’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위버의 그림 속 여성들은 또 다른 보편적 경험, 이른바 ‘멈춤’에 대한 갈망을 조용히 공유한다.
위버는 이전에 자신의 작품 속 여성들에 대해 ‘감정적인 자화상’이라고 표현한 바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들은 내가 아니에요. 나와 연결되어 있지만, 나와 다른 독립적인 존재죠.”
1989년 미국 버몬트주의 학구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위버는 어린 시절부터 ‘강박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진로가 구체화된 것은 대학에 입학한 후였다. 대학 시절 그는 존 커린, 다나 슈츠, 니콜 아이젠만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접했고, 자신도 ‘그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느꼈다. 하지만 진정한 터닝 포인트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예술 작품을 접하면서 찾아왔다. 바로 ‘댄싱 걸(Dancing Girl)’이라 불리는 선사시대 청동 조각상이다. 높이 10cm도 채 안 되는 이 조각상은 당당한 자세로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엉덩이를 한쪽으로 살짝 튼 소녀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 ‘애티튜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경이로웠어요.” 이후 위버는 댄싱 걸을 해석한 그의 첫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느꼈다.
위버가 휴대폰을 꺼내 댄싱 걸 사진을 보여준다. 단정한 폴로 셔츠와 바지, 로퍼 차림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손끝의 물감 자국이 눈에 띈다. 그의 작업이 얼마나 몸을 격하게 써야 하는지 보여주는 흔적이다. 위버는 거대한 캔버스를 앞에 두고 온몸으로 붓을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는데, 이 작업을 ‘드로잉-페인팅’이라 부른다. 그가 새로운 누드 연작에 아주 만족하는 이유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닿아 있기 때문이다. “저는 회화 작업을 할 때 드로잉의 감각을 따라가고 싶어요. 드로잉이 다양한 생각을 가장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형태로 옮길 수 있다고 믿거든요.”
위버의 작업은 베를린 남쪽 랑스도르프 일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과거 항공기 제조 공장이었던 뷔커의 낡은 건물은 현재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위버는 그곳에서 남편 에릭 데겐하르트와 함께 작업을 이어간다. 데겐하르트는 위버를 위해 직접 캔버스를 만들고 밑칠을 해주며, 때로는 예술적 연습 상대가 되어 함께 호흡을 맞춘다. 부부는 갤러리스트 막스 헤츨러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그의 초대로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한때 직원 식당으로 쓰이던 공간은 현재 아틀리에로, 구 관리동의 2층은 부부 거주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집에서도 중심은 예술이다. 가장 큰 방 한가운데엔 물감 튜브와 붓, 각종 작업 도구로 가득한 테이블이 있고, 그 주변에 빈 캔버스, 종이 그리고 작업 중인 그림들이 흩어져 있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잉크 드로잉도 쌓여 있다. “이런 그림은 빠르게, 한 번에 여러 장씩 그려야 자연스러운 게 나오거든요.” 그 앞쪽 바닥에는 슈퍼마켓에서 본 튤립에서 영감을 받은 꽃 그림들이 흩어져 있다. 왜 갑자기 꽃을 그리기 시작했냐는 질문에는 “나 자신을 내 틀 밖으로 꺼내고 싶었어요”라고 답한다. 이 꽃들은 기존에 그려오던 여성 인물들에게서 벗어난 것이라기보다 보완하는 존재에 가깝다. 기본 모티프는 여전히 하나의 선처럼 이어진다.
위버는 남편과 함께 고안한 도구들도 보여줬다. 이를테면 캔버스를 최대한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망원경 봉에 단 목탄 연필 같은 것들. 그리고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무용에 비유했다. 둘은 모든 준비가 맞물린 채 단숨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대화 내내 ‘자유’라는 단어도 자주 등장했다. 그는 사이 트웜블리와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이름을 말한다. “그들의 작업을 보면 마치 저를 도발하는 것 같아요. 그런 자극이 제 회화를 더 충동적이고, 거칠고, 자유로워지게 만들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위버의 작품을 그토록 매혹적으로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온몸으로 예술을 이행하는 한 인간이 담겨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남편 데겐하르트는 새 캔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위버는 말한다. “다음 그림들은 어쩌면 조금 더 작아질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여전히 공간을 가득 채우겠죠.”
※ 그레이스 위버의 «Grace Weaver»는 11월 29일까지 막스 헤츨러 베를린에서 열린다.
정지윤은 <바자>의 어시스턴트 에디터다. 위버의 그림 속 여성들을 상상하다 나 역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Credit
- 글/ Marlene Sørensen
- 사진/ Eric Degenhardt
- 번역/ 김민소
- 디자인/ 진문주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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