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김영광·임시완…'재벌 3세'의 공식을 비틀다
'재벌X형사'부터 '나의 유죄인간'까지, 또 재벌? 이번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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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주인공과 사랑에 빠지는 '재벌 남주'는 K-드라마의 오래된 공식 중 하나다. <파리의 연인>(2004)의 한기주(박신양)는 '백마 탄 왕자님'으로 불렸고, <꽃보다 남자>(2009)의 구준표(이민호)는 신화그룹 후계자였다. 신드롬급 인기를 끈 <파리의 연인>조차 방영 당시 '뻔한 이야기'라 지적 받았으니, 대중에게 낯익은 공식이 된 지 20년도 넘은 셈이다. 그런데 이토록 닳고 닳은 인물 유형이 불과 한 달 사이 잇따라 시청자 앞에 선다. <재벌X형사2> 안보현, <나를 충전해줘> 김영광, <나의 유죄인간> 임시완이 그 주인공이다. 또 재벌 이야기냐는 기시감이 들 법도 하지만, 이번 재벌 3세들은 예전의 '그 남자들'과 결이 다르다. 재벌이라는 화려한 외피는 그대로인데, 그 안을 채운 서사와 태도가 달라졌다.
<재벌X형사2> 진이수, 자본의 과시에 책임을 얹은 변주
SBS 드라마 <재벌X형사2> 스틸
SBS 드라마 <재벌X형사2> 스틸
SBS 금토드라마 <재벌X형사>의 진이수(안보현)는 클리셰를 가장 노골적으로 끌어안은 인물처럼 보인다. 수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막대한 재력과 인맥으로 판을 뒤집는 '플렉스 수사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시즌1이 얼떨결에 경찰 배지를 단 철부지 재벌 3세의 활극이었다면, 지난 9월 19일 종영한 시즌2는 같은 인물이 사건과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진 '진짜 형사'로 성장하는 과정에 무게를 실었다. 질문이 달라진 셈이다. 재력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아니라 그 재력을 어디에 쓰는지를 묻는다. 재벌 3세의 돈은 여주인공의 곤경을 해결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건을 향하고, 돈을 휘두르던 남자가 그 힘에 형사로서의 책임을 얹는 순간 재력은 히어로 활극의 연료가 됐다.
<나를 충전해줘> 백호랑, 구원자에서 충전이 필요한 남자로
넷플릭스 시리즈 <나를 충전해줘> 스틸
넷플릭스 시리즈 <나를 충전해줘> 스틸
10월 9일 10부작 전편이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나를 충전해줘>의 백호랑(김영광)은 시크한 그룹 후계자라는 낯익은 스펙을 달고 출발한다. 그러나 수술 당일 병원이 정전되면서 인공심장 배터리가 방전되는 순간, 재력의 전능함은 무력해진다. 그를 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닿는 사람마다 감전시켜 온 드라마 작가 나보배(채수빈)다. 재수술 전까지 딱 3개월만 곁에 있어 달라는 부탁에서 시작된 '충전 계약'은 서로의 필요가 맞물린 거래지만, 그 안에서 재벌 3세는 여주인공을 구원하는 쪽이 아니라 그녀 곁에서만 충전되는 결핍의 당사자로 선다. 흥미로운 건 낡은 공식의 행방이다. 철없이 사고를 치고 후계 자리를 탐내는 전형적인 재벌 3세의 문법은 작품 속 백호랑의 사촌 최도윤(정재광)이 넘겨받았다.
<나의 유죄인간> 윤이준, 완벽한 후계자에게 드리운 의심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스틸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스틸
오는 19일 tvN 월화드라마로 첫 방송되는 <나의 유죄인간>의 윤이준(임시완)은 재계 서열 1위 태강그룹의 후계자다. 어린 시절부터 후계 후보로서 능력과 성과를 증명해 온 만큼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인물이지만, '캐비닛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며 하루아침에 의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다. 그의 곁에는 남자 수행비서로 위장한 특수부대 출신 형사 강재희(설인아)가 숨어든다. 보호인지 감시인지 알 수 없는 이 밀착 동행에서 재벌 3세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한 겹씩 벗겨 내야 할 미스터리이자 시험대에 오른 쪽이다. 임시완은 이 인물을 "앙칼진 고양이 같다"고 표현하며,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과거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가 왜 그런 사람이 됐는지를 따라가는 일이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맞물린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tvN 월화드라마 <나의 유죄인간> 스틸
재력에 책임을 얹어 가는 이수, 곁에서만 충전되는 호랑, 의심의 한복판에 선 이준. 세 인물이 향한 길은 다르지만 출발점은 같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주인공은 서사의 긴장을 멈추게 만든다. 재력이 전능할수록 이야기가 먼저 그 전능함에 틈을 내야 하는 이유다. 철부지의 미성숙, 꺼져가는 심장, 살인 혐의는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균열이다. 부와 스펙만으로 매력이 되던 시절을 지나, 재벌이라는 설정은 이제 인물의 결핍과 성장을 시험하는 장치로 쓰인다. 익숙한 틀이기에, 그 틀을 비튼 지점은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Credit
- 사진 / SBS·넷플릭스·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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