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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과 ‘베를린’이 2026년에 재소환된 이유

‘왕사남’과 ‘휴민트’가 쏘아 올린, 시대를 초월한 ‘빈티지 신상’의 발견

프로필 by 박현민 2026.02.22

콘텐츠의 생명력은 더 이상 개봉 시기에 묶여 있지 않다. 2013년 극장가에 깊은 인장을 남겼던 영화 <관상> <베를린>이 13년의 시간을 건너 2026년 다시 소환되고 있다. 각각 900만, 700만 관객을 동원했던 흥행작이 안방극장에 되돌아온 것이다. 왜 지금일까?



<관상> ↔ <왕과 사는 남자>


역사의 연결고리가 만든 프리퀄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박지훈 | 쇼박스 홈페이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박지훈 | 쇼박스 홈페이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이 기묘한 재소환의 첫 번째 방아쇠는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는 사극 <왕과 사는 남자>가 당겼다. 한재림 감독의 <관상>은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파토스 위에 관상가라는 허구를 입힌 팩션 사극의 정점이다. <왕사남>이 계유정난 이후 유배지로 떠난 단종(박지훈)의 비극적 후일담을 다루고 있는 만큼, 관객들에게 <관상>은 이 거대한 비극의 전초전을 보여주는 완벽한 '프리퀄'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왜 단종이 유배를 떠나게 됐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 스틸 영화 <관상> 스틸 영화 <관상> 스틸 영화 <관상> 스틸 영화 <관상> 스틸 영화 <관상> 스틸

송강호, 이정재, 조정석, 김혜수, 이종석의 연기 호흡은 13년이 지난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왕사남>의 유지태가 연기하는 '한명회'와 <관상> 속 김의성의 '한명회'를 교차 편집하며 역사적 타임라인을 스스로 완성해 나간다. 말하자면,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비공식 세계관의 확장이다. 두 작품은 별개의 서사지만, 동일한 배급사(쇼박스)라는 공통분모와 역사가 공유하는 맥락 덕분에 관객들은 극장을 나선 뒤 자연스럽게 OTT 플랫폼에서 <관상>을 ‘재발견’하고 있다.



<베를린> ↔ <휴민트>


세계관의 지도를 완성하는 트리거

영화 <휴민트> 스틸 영화 <휴민트> 스틸 영화 <휴민트> 스틸 영화 <휴민트> 스틸

<베를린>의 귀환 역시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와 궤를 같이한다. <베를린>과 <모가디슈>를 잇는 류승완식 ‘해외 로케이션 3부작’의 계보는 신작 <휴민트>를 통해 비로소 완결된다. 하정우, 전지현, 한석규, 류승범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친 처절한 사투는 여전히 웰메이드 첩보 액션의 교본으로 불리는 명작.

영화 <베를린> 스틸 영화 <베를린> 스틸 영화 <베를린> 스틸 영화 <베를린> 스틸

흥미로운 지점은 <베를린>의 엔딩에서 주인공 표종성(하정우)이 향했던 목적지, 바로 블라디보스토크다. 이 도시가 <휴민트>의 주요 무대로 등장하고 극 중 '표종성'의 이름이 은밀하게 언급되는 순간, 13년 전의 기억은 현재의 세계관과 강력하게 충돌한다. 명시적인 속편은 아닐지라도, 이러한 느슨하고 영리한 연결고리는 관객들이 전작을 다시 찾아보게 만드는 거부할 수 없는 트리거가 되었다.

영화 <베를린> 스틸

영화 <베를린> 스틸

시차의 무력화, 타임리스 콘텐츠의 탄생

영화 <관상> 포스터

영화 <관상> 포스터

영화 <베를린> 포스터

영화 <베를린> 포스터

이러한 구작들의 역습은 단순히 올드팬들의 추억 여행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OTT 구독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젠지(Gen-Z) 세대에게 10여 년 전의 명작은 추억의 재탕이 아닌, 처음 발견된 매력적인 ‘빈티지 신상’이다. 개봉 연도는 더 이상 콘텐츠의 신선도를 규정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시간의 순서를 지우고 관심사를 기준으로 콘텐츠를 배열하며, 이른바 ‘시차의 무력화’를 실현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영화 <휴민트> 포스터

영화 <휴민트> 포스터

신작이 유입을 만들고, 알고리즘이 가교 역할을 하며, 완성도 높은 구작이 다시 소비된다. 이 순환 구조 속에서 잘 만들어진 IP는 일회성 소비재가 아닌 ‘타임리스 콘텐츠’로 재편된다. <관상>과 <베를린>의 소환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신작이 과거를 호출하고, 플랫폼이 시간을 지우며, 관객이 능동적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동시대적 소비 방식의 결과다. 콘텐츠는 더 이상 과거로 밀려나지 않는다. 좋은 작품은 언제든 현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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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 쇼박스·NEW·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