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하우스의 하이주얼리 이야기
샤넬부터 프라다, 돌체앤가바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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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SHINE
럭셔리의 새로운 엘도라도로 떠오른 하이주얼리 시장에 패션 하우스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한때 보석 장인의 영역이었던 주얼리의 세계를 창의적으로 확장하는 중.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차보라이트, 루비, 다양한 색상의 사파이어가 파베 세팅으로 화려한 조화를 이루는 ‘마리나 체인’ 네크리스는 Gucci High Jewelry.
지난가을, 미우치아 프라다는 프라다의 파인주얼리 컬렉션인 ‘쿠뢰르 비방뜨(Couleur Vivante, 생동하는 색채)’를 공개했다. 컬렉션은 애미시스트, 아콰마린, 마데이라 시트린, 핑크 모거나이트, 페리도트 등 그 이름만큼 다채로운 유색석을 활용한 주얼리 피스로 구성되었다. 특유의 절제가 돋보이는 주얼리 디자인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 화려한 스톤 컬러도 인상 깊었다. 이번 컬렉션은 100% 골드 소재를 사용한 주얼리 컬렉션 ‘이터널 골드(Eternal Gold)’를 출시한 지 3년여 만에 선보인 두번째 주얼리다. 당시 프라다 여사는 주얼리 세계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도전에 나섰고 그 흐름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2023년 생 로랑이 주얼리 시장에 합류한 데 이어, 보테가 베네타를 비롯한 여러 패션 하우스가 유사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인 주얼리 시장은 럭셔리 산업의 불루오션으로 부상했다. 컨설팅 회사 베인&컴퍼니(Bain&Company)에 따르면 2024년 명품 시장 전반이 침체된 가운데 주얼리 부문은 더 나은 실적을 기록한 몇 안 되는 분야로 꼽혔다. 대표적으로 리치몬트(Richemont) 그룹은 2025년 3월 말 회계연도 기준, 주얼리 매출이 153억 유로(한화 약 26조 349억원)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8% 성장한 수치.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부첼라티 등 주얼리 메종의 성장이 있었다. 구찌, 발렌시아가,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를 보유한 케어링(Kering) 그룹 역시 주얼리 시장을 가장 가능성 높은 패션 산업으로 눈여겨보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케어링의 주얼리 부문 매출은 지난 10년간 4배나 증가했다.
주얼리는 이제 다른 장식예술과 동등한 위상을 지닌 창작품이 되었다.
핑크·화이트·옐로 골드에 다이아몬드· 핑크 사파이어·스피넬, 머더오브펄을 세팅한 ‘디오렉스퀴’ 네크리스는 Dior Joaillerie.
업계 관계자들에게 주얼리 시장의 가파른 성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2021년 컨설팅 회사 맥킨지&컴퍼니(McKinsey&Company)가 파인주얼리 시장이 2025년까지 연평균 3~4% 성장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이는 패션 하우스들이 주얼리 시장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는 배경을 뒷받침한다. 샤넬 주요 부문을 오랫동안 이끈 뒤, 레포시와 피아제의 수장도 역임한 벤자민 코마르(Benjamin Comar)는 이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주얼리는 패션, 시계, 가죽 제품에 비해 럭셔리 하우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분야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브랜드가 명확히 각인된 주얼리는 전체의 5~1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0~25%까지 늘어났죠. 럭셔리 하우스들은 이 영역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미학적 유산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주얼리를 바라보는 소비자 인식도 달라졌다. 더 이상 특별한 기념일에만 구매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 여기에 가죽 제품이나 의류에 비해 주얼리의 가격 상승 폭이 상대적으로 완만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하다. 요즘은 1천만원을 훌쩍 넘는 가방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같은 가격대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수 있는 주얼리를 선택하는 일이 더 현명한 소비로 인식되고 있다.
시대적 변화 속에서 패션 하우스가 주얼리 사업을 확장할 수밖에 없는 지금, 사실 패션 하우스와 주얼리 메종 사이에는 오랫동안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해왔다. 이를 가장 먼저 체감한 인물은 가브리엘 샤넬이다. 1929년 대공황 이후 급락한 다이아몬드 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런던 다이아몬드 협회(London Diamond Corporation)는 샤넬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일러스트레이터 폴 이리브(Paul Iribe)와 함께 별과 혜성을 형상화한 ‘비쥬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 컬렉션을 완성했다. 가볍고 변형 가능한 하이주얼리 피스들은 공개 직후 파리 사교계를 매료시켰지만, 동시에 방돔 광장에 있는 주얼리 메종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다. 1932년 10월, 신문 <랭트라시제엉(L’Intransigeant)>에 실린 공개 서한은 그 반발의 수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트 쿠튀르 주얼리 협회(Chambre Syndicale de la Haute Joaillerie)가 발표한 이 성명은 럭셔리 산업 역사에서 손꼽힐 만큼 공격적인 문서로 평가된다. 쇼메, 멜레리오, 푸케 등 주요 주얼리 메종이 서명한 서한은 샤넬에게 다이아몬드 주얼리 컬렉션의 구상과 제작을 맡긴 결정에 ‘극도의 분노’를 표했다. 그들은 이를 “직업적 명예와 수백 년 전통을 훼손하고 하이주얼러들의 존엄까지 침해한 일”로 규정했다. 나아가 “쿠튀리에에게 이처럼 고귀한 임무를 맡기는 것은 파리를 세계 다이아몬드의 수도로 만든 주얼리 장인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들은 이를 무모한 실험이자 일시적 기행으로 간주하며 전시된 모든 작품을 전문가의 감독 아래 완전히 해체하고 이러한 결정에 대해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샤넬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후 다시는 보석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샤넬이 주얼리 컬렉션을 다시 선보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난 1988년, 샤넬은 세계적인 보석 세공사이자 예술가인 로렌즈 바우머(Lorenz Bäumer)와 손잡고 주얼리계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당시 샤넬은 지난 5년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주도한 레디투웨어 컬렉션으로 새 활력을 얻고 있던 시기였다. 라거펠트는 1970년대 말 액세서리 부문을 위해 영입한 프랜시스 파티키 스타인(Frances Patiky Stein)의 디자인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파리 중앙공과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엔지니어 바우머의 오브제에는 즉각적인 매력을 느꼈다. 이후 바우머는 정교한 기술력과 시적 감수성을 결합해 가브리엘 샤넬의 상징인 카멜리아와 퀼팅 모티프를 주얼리로 재해석하며 브랜드의 미학을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이로써 샤넬은 주얼리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게 된다. 이번에는 주얼러들의 반발도 없었다. 1980년대 방돔 광장의 주얼리 하우스가 전반적인 침체기에 접어들며, 오랜 세월 그곳을 지켜온 가문들이 하나둘 떠났기 때문이다. 부쉐론은 1994년까지 가족 경영을 유지하다 스위스 기업에 매각되었고(현재는 케어링 그룹 산하에 속해 있다), 아펠 가문은 내분 끝에 메종을 리치몬트 그룹에 넘겼다. 쇼메 형제들은 대대적인 파산 이후 공적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러한 침체 속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한 메종이 있었으니, 바로 까르띠에다. 알랭 도미니크 페랭(Alain Dominique Perrin)의 지휘 아래 까르띠에는 현대미술재단을 설립하고, 아카이브 주얼리를 전시를 통해 공개하기 시작했다. 1989년 프티 팔레(Petit Palais)에서 열린 첫 전시 ≪까르띠에의 아트(L’Art de Cartier)≫는 프랑스 박물관 역사상 최초의 단일 브랜드 전시로 기록되었고, 이후 ‘모노그래픽(하나의 주제만 깊이 있게 다루는 방식)’ 전시라는 새로운 형식을 탄생시켰다. 전시를 통해 재조명된 주얼리는 사치품의 범주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주얼리가 다른 예술 장르와 동등한 위상을 지닌 장식예술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까르띠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이주얼리’라는 개념을 본격적으로 정립했다. 극히 희귀한 스톤을 세팅한 하이주얼리 컬렉션을 매년 정기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시기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패션 하우스들 역시 대형 럭셔리 그룹으로 재편되며 산업 전반의 구조가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아이웨어와 액세서리, 라이프 스타일에 이르기까지 하우스가 확장할 수 있는 표현의 영역은 끝없이 넓어졌다. 이들은 까르띠에가 재창조한 주얼리 시장을 면밀히 관찰했고, 그곳에 승부수를 던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메종의 정체성을 담아 공개되는 주얼리의 호가가 점차 미술작품의 경지에 근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주얼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입증한 패션 하우스는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디올은 지난 25년간 빅투아르 드 카스텔란(Victoire de Castellane)에게 주얼리 디자인을 맡기며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가족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프라다와 펜디는 물론, 창립 가문과 긴밀히 연결된 몇몇의 하우스도 이 복합적인 주얼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 듀오는 엄선한 수백 명의 고객을 초청해 하이주얼리 컬렉션인 ‘알타 조이엘레리아’를 ‘알타 모다’ ‘알타 사르토리아’ 라인과 함께 선보이는 쇼를 수년 전부터 성공적으로 이어왔다. 이 자리에서 주얼리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 패션과 함께 입혀지고 경험되는 존재로 자리한다. 반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는 하우스도 있다. 패션 출신 아트 디렉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이 그렇다. 미디어 노출과 이동이 잦은 디렉터의 커리어 특성상 주얼리 컬렉션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불과 몇 개월 만에 전면 개편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돌체앤가바나 2025 로마 알타 모다 컬렉션.
유니크한 주얼리의 호가는 미술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까르띠에의 이미지·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 피에르 레네로(Pierre Rainero)의 말에서 우리는 주얼리 시장의 미래를 읽어낼 수 있다. “주얼리는 한 사람의 삶과 함께하며 전해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과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고, 신체를 돕는 동시에 일시적인 트렌드를 초월할 수 있는 오브제를 디자인하죠. 우리의 작품은 동시대를 위해 고안되지만, 앞으로 도래할 또 다른 시대 역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주얼리 메종으로서의 정체성은 곧 시간을 다루는 문화죠. 고객에 대한 존중은 창작물의 지속성에서 드러납니다.” 그의 철학은 하이주얼리의 세계가 단지 시장의 확장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창작의 소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Credit
- 글/ Hervé Dewintre, Paul-Arthur Jean-Marie
- 번역/ 이승연
- 사진/ © Chanel, Dior, Dolce & Gabbana, Gucci, Prada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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