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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 속, 험한 것이 나온 그곳은 어디?

우리가 속하고 돌아갈 영화 속 그 땅은 진짜 어디인지 궁금하다!

프로필 by 신진주 2024.03.13
험한 것이 나온 땅
기장 도예관광 힐링촌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쉽게 말해서 묫바람, 보통 산소탈이라고도 하는데, 뭐 한마디로 조상 중에 누군가가 불편하다고 지랄하고 있는 거죠.” 화림(김고은)이 의뢰인 박지용(김재철)의 집을 둘러보며 언급한 묫자리이자, 모든 이야기의 뿌리인 문중산은 부산 기장 도예관광 힐링촌 부지에 700여 평의 오픈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영화 속 묫자리는 소나무로 둘러싸인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데, 이는 장재현 감독은 삼면이 나무로 둘러싸인 땅을 구현하길 원했기 때문. CG 작업을 선택하지 않고 흙의 색 하나하나 세팅하는 등 현장감 있는 분위기를 내기 위한 고된 제작 과정이 있었다.

부산의 로케이션 지원을 담당한 부산영상위원회 손일성 씨에 따르면 당시 소나무재선충의 유행으로 소나무를 수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기장군의 도움으로 주변 잡목을 수십 그루를 옮기고 트럭으로 흙을 쌓아 올리는 등 함께 노력을 기울여 장 감독이 원하는 분위기의 묫자리를 구현할 수 있었다. 1막 초반에 상덕(최민식)이 소나무 근처에서 찾은 송이버섯을 영근(유해진)과 둘이 구워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묫자리 주변에 소나무가 많은 것과도 연결된다. 오픈세트장은 원상 복귀되어 더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주변 부지에 영화진흥위원회 부산 촬 영소 건립이 진행 중이라 하니 이곳에서 촬영하는 영화를 더 많이 기대할 수 있겠다.


뭐가 나왔다고 거기서...
기장 국도 14호선과 기장의 숲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3막 ‘혼령’에서 갑작스러운 폭우로 화장을 미루게 되어 관은 고성 군립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진다. 영근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영안실 관리자가 몰래 개관을 하면서 ‘험한 것’, 즉 의뢰인 박지용의 할아버지 혼령이 빠져나간다. 원한을 품은 혼령이 자손에게 향할 것을 걱정한 상덕은 다급히 박지용에게 전화를 시도하며 운전하는데, 이 길이 기장 국도 14호선이다.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경상북도 포항시를 잇는 318.2km의 국도로 경상도 주요 도시를 지난다. 영화에서는 기장군 장안읍 명례리 일대의 국도가 등장한다.

산꼭대기 묫자리로 가던 길에 만나는 ‘여우 길’은 국도 14호선이 지나는 불광산 숲에서 촬영했다. 기장의 주산인 불광산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천년고찰 장안사가 유명하다. 특히 산내 작은 암자인 척판암 산비탈에 서면 불광산 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산길의 일부 풍경은 기장 아홉산숲에서 촬영했다. 대나무숲으로 유명한 아홉산숲은 영화 <협녀, 칼의 기억>, <명당>, <군도> 등 다양한 작품을 촬영한 부산의 촬영 맛집. 희귀 대나무와 삼나무, 밤나무, 금강소나무, 사스레피나무 등 숲의 원형 그대로의 천연림이 수백 년간 뿌리내리고 있다. 그 배경에 400년간 숲을 돌본 한 집안의 의지와 노고가 있다. 자연 생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2016년이 되어서야 일반인 공개를 했고, 현재도 매일 최소 인원에게만 숲의 문을 연다. 부산뿐만 아니라 원하는 분위기를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파주, 고성, 춘천, 무주, 충주 등 전국의 각기 다른 곳에서 촬영한 후 하나의 공간으로 완성했다. 긴장된 몰입감이 강렬하게 이어지는 이유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강원도 고성 향로봉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이름 없는 묘' 비석 뒤에 새겨진 숫자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묫자리가 자리한 위도와 경도다. 상덕은 일찍이 비석에 정확한 좌표가 새겨있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6막 ‘쇠말뚝’에서는 ‘도깨비 놀이’ 굿으로 귀신에 들린 봉길(이도현)이 ‘삼팔삼사일칠 일이팔삼일사구’ 반복해 외친다. 이 숫자로 위치를 찾아보니 강원도 고성 향로봉 부근이다. 장재현 감독은 풍수사들에게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곳에 관한 자문을 구했고, 모두 강원도 고성 향로봉을 가리켰다고.

상덕, 영근, 화림이 축경을 온몸에 문신처럼 새기고 산에 비장하게 올라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항공 샷이 향로봉이다. 박지용이 더 플라자 호텔에서 할아버지 혼령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말한,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에서 ‘범의 허리’다. 높이 1,296m, 백두대간 최북단에 있는 향로봉은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1년에 단 하루, 평화 트레킹 대회가 열리는 날에만 200명 한정으로 향로봉 정상을 개방한다.
사진/ 부산 영상 위원회 사진/ 부산 영상 위원회 사진/ 부산 영상 위원회

화림의 수호천사 나무 신
담양 경산리 당산나무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마지막 막에서 화림은 오니를 은어와 투구로 유인한 후 당산나무를 사이에 놓고 대화를 나눈다. 이야기를 나누던 신목(神木)이 인간임을 알아차린 오니가 화림을 공격하려 하자 화림의 몸주신인 할머니(만신 고춘자)가 빛줄기 사이로 마치 구원자처럼 등장한다. 민족 신앙적 존재로서의 거대한 당산나무 앞에서 오니와 대치하는 할머니 모습은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자체인 오니와 대비되면서 기묘하고 신비로운 희열이 느껴진다. 영화 속 당산나무는 담양군 가사문학면의 ‘경상리 느티나무'로 알려져 있다. 수령이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중 가장 신령한 위용과 품을 자랑하는 마을 주목으로 대나무숲에 둘러싸여 있다. 높이 35m, 몸통 너비 40m, 나이는 500년이 넘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전히 마을에서는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more) 도교 경문을 만나는 공주 한국민속극박물관
사진/ 쇼박스 사진/ 쇼박스
<파묘>에 도교 경문이 두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봉길이 미국 LA 병원에서 의뢰인의 아기 배 위에 부적을 올리고 외우는 경문으로 민간 도교 경전인 <옥추보경>이다. 옥추보경을 독경하면 천리 귀신이 다 움직이고 질병을 낫게 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서 굿에서 가장 많이 읽혔다. 두 번째로 봉길이 몸에 새긴 문신 <태을보신경>으로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는 도교 경문이다. 태을보신경을 읽으면 수호신을 부려 신력을 발휘하고 악신을 위협해 스스로를 보호하게 된다고. 공주민속극박물관은 이런 도교 경문과 부적, 설위 설경과 같은 충청권 무속 신앙 등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처음 짓고 풍물 공연을 기획한 민속학자 고 심우성 선생이 설립한 박물관으로 그가 수집한 민속극 인형, 탈, 서낭당, 굿, 무속 자료, 전통 의례에 소도구 등 진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info)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돌모루2길 17-15, 0507-1378-4933, 사전 방문 문의 필요

Credit

  • 자료제공 / 부산영상위원회 쇼박스
  • 사진 / 쇼박스 파묘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