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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

2025 아카데미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에는 이유가 있다

프로필 by 고영진 2025.03.02

멕시코의 어느 비정한 거리에서


조 샐다나가 춤을 추고 노래할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액션과 누아르, 드라마가 모두 있다. 한마디로 <에밀리아 페레즈>는 잘 만든 뮤지컬 영화다.



고백하자면, 나는 뮤지컬 영화에 흥미가 없다. 사실 불호에 가깝다. 대사를 주고받다 별안간 흐르는 멜로디에는 번번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영화가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고, 생 로랑 프로덕션이 제작했으며,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과 4명의 여배우가 함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도 선뜻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것은 뮤지컬 영화라는 이유뿐이었다. 여자가 되고 싶은 멕시코 마약 갱단의 보스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 마니타스가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돕는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의 이야기.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를 읽고 난 뒤 거부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과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 트랜스젠더. 민감하고 날카로운 이야깃거리 사이 음악과 춤이 끼어들 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에밀리아 페레즈>를 보며 신기했던 건 음악적 요소가, 다시 말해 말에 음률이 붙는 순간에 웃음이 아닌 탄성이 새어 나왔다는 점이다. 시작은 영화의 오프닝부터다. 활기찬 멕시코 시장에서 리타를 중심으로 한 화려한 군무는 순식간에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냈다. 여성이 되는 일에 리타를 고용하기 위해 자신의 요구사항을 일정한 음으로 읊조리는 마니타스의 대사는 랩처럼 들렸다. 속도를 맞춰 총을 들었다 놓으며 탄창을 가는 갱단의 규칙적인 움직임은 난타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적재적소에서 긴장과 몰입을 극대화하는 장치로서의 음악과 춤은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영화의 주인공은 마니타스와 에밀리아를 연기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지만, 내게 가장 뚜렷한 잔상을 남긴 건 조 샐다나였다. 그는 이 영화로 생애 최초 골든글로브와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나는 그가 영화 <아바타>의 네이티리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가모라였다는 사실을 영화가 끝난 후에야 알았다. 난독증과 불안 증세로 지금껏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지 못했다고 밝힌 그는 이 작품을 위해 배의 시간을 들여 스페인어 대사 대부분을 소화했다. 무엇보다 춤을 잘 춘다. 몸을 잘 쓰는 배우가 정교하게 짜인 시퀀스 안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은 뮤지컬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짜릿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에디터/ 고영진


※ <에밀리아 페레즈>는 3월 12일 개봉한다.


Credit

  • 사진/그린나래미디어
  • 어시스턴트/ 정지윤
  • 디자인/ 이진미
  •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